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Sep 01. 2024

그래도 잘 들린다


왼쪽 귀가 고장 났다

만성 외이도염이 심해졌길래
낮밤이 바뀐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어 아내 근무지로 향했다

운 좋게 아내 지인께 진료받았는데,
염증이 귀를 덮어 심각한 상태이고

수술할 수도 있다며 응급처치를 했다

소리가 지나갈 수 없는

그러다 보니 왼쪽 귀가 안 들린다
한쪽이 안 들리니까 다른 쪽도 잘 안 들린다
덕분에 멍하고 어지럽고 졸리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듣기 싫은 소리와 불편한 음성,
자극적인 소음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무척 조용하


평소에 고즈넉한 게 좋다고 떠벌리니까

지친 귀가 쉴 수 있는 여유와
조용한 세상을 선물 받았나 보다


세상을 닫은 채 집으로 돌아왔더니

려 오래 듣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먹먹하니까 막막하고 묵묵해진다


그런데 말이다


분명 잘 안 들렸는데

간호하며 걱정하는 아내 음성은

달팽이관까지 통과한


아픈 아빠를 걱정하

울먹이는 큰딸 목소리

가슴까지 닿는


반창 우스꽝스럽다고

놀리며 지저귀는

막내 소음도 걸러내지 않는


아무리 귀가 막혀도

아내와 딸들이 보낸 사랑스러운 소리

그래도 잘 들린다



---------------------------------



* 며칠 동안 약 잘 먹고 (건들지 않아서) 조금 나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는데, 쉽지 않네요. 앞으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쓸 수 있기를 또 한 번 다짐합니다. 다시 반갑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4시 10분 알람을 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