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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15. 2024

디즐랜드 가는 길


평소 쓸데없는 걱정 많아서인지 아니면 불안한 감정이 앞서서인지 모르겠지만 여행 당일 아침 설렘보다는 초조함이 들었다. 급하게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을 모두 뒤로한 채 떠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나마 평소와 비슷하게 일어나 공항으로 향하는 길만은 불편함이 없었다.

이른 시간 공항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반대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어둡거나 지친 표정이었다. 부지런히 세상을 살아내는 모습이 스러우면서도 일에 찌든 모습이 안타까웠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느껴지면서 일상에 갇힌 그들을 비일상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일찍 출발해서 느긋하게 공항에 도착했지만, 이상하게 분주했다. 더구나 미취학 아동 덕분에 우대 출국심사를 했지만, 비행기 좌석에 앉을 때까지 여유롭지 않았다. 가볍게 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면세점을 한 바퀴 까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여행지뿐만 아니라 공항에서도 늘 시간이 사라진다. 아마도 공항에서부터 여행을 즐기려 크다 보니 공항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공간에서 탐구했기 때문일 것이.


인천공항 스타벅스 북카페


아이들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에는 했다. 아내와 각종 라운지도 돌아다니며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는 인천공항을 동서남북으로 샅샅이 탐험했다. 시간을 쪼개어 놀겠다는 강한 의지 덕분에 인천공항 게이트와 상점 위치를 단번에 찾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어찌  간에 탑승 시간이 되면 탑승 게이트 근처로 다. 아내는 탑승시각 30분 전쯤 불안감과 초조함이 임계치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휴대가 가능한 20리터짜리 리어와 등짐 가방 하나를 메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좌석 위에 을 적재하고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행기는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했다.


작은 비행기라서 좌석이 3-3이었다. 두 명씩 앞뒤로 앉을 수도 있었지만, 엄마 쟁탈전 패배자 역할을 내가 자처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륙 직전 옆 두 좌석이 빈 상태로 출입문이 닫혔다. 신조어 중 '개'로 시작하는 단어가 저렴하게 느껴져서 큰딸에게 쓰지 말라고 훈육하는데, 순간 개꿀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혼자서 세 자리를 차지하는 기념으로 잠시 발을 뻗어 사진을 찍었더니 중학교 때 도덕 선생님 같은 딸이 나무랐다.


"발 내리라고"


어찌 됐든 간에 빈좌석으로 넘어오라는 권유에도 비좁은 세 자리에 앉아 가겠다는 따님들 도덕성은 칭찬할만했다. 다만, 고지식함과 비효율로 세상 살기 쉽지 않겠다는 우려도 들었다. 뒤늦게 돌아보니 아빠와 함께 타는 게 부끄러웠을 수도 있다.


수십 번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늘 긴장한다. 비행기 출력이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지면 몸은 자연스럽게 좌석에 밀착된다. 몸과 좌석이 하나가 되고 보트가 수면 위로 빠르게 나아가듯 가벼운 울렁거림을 거치면 지난 삼사 십 년 동안 발생한 각종 비행기 사고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평소 내 근심과 걱정을 정확하게 파악한 알고리즘이 사고 영상을 눈앞에 자주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매번 회피했지만 머릿속엔 온통 사고 장면만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이륙할 때 비행기 사고는 없었다거나 가족이 함께 타고 가니까 죽어도 두려울 게 없다며 조여든 새가슴을 펼쳐 날갯짓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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