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Jul 20. 2021

인천속으로

고향을 인천이라 말하는 자들은 유독 애향심이 강하다



"고향이 어디예요?"


"태어난 도시요? 아니면, 고등학교 다닌데요?"


 누군가 고향을 물어보면, 쉽게 대답할 때도 있지만, 가끔 어디라고 대답할지 애매하여 되묻는 경우가 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하지만, 교통과 도시가 발달하여 이사도 많이 하다 보니 한 지역에서 태어나서 성인까지 자라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서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인 학창 시절을 보낸 지역으로 말하거나 태어난 장소 또는 오랜 기간 살았던 곳을 고향으로 정한다. 고향을 어느 곳으로 결정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가슴속에서 추억과 슬픔이 남아서 그리워하는 소중한 지역이 고향이면 된다. 고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왠지 측은한데, 고향을 갈 수 없는 실향민 들은 그리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향수병도 있다. 나도 고향을 생각하면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가슴 한편이 조금 쓰리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아직까지 부모님이 인천에 산다. 성인이 되어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았고 20살 이후로 인천에는 단 한 번도 살았던 적이 없다. 그래도 내 고향은 늘 인천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인천 토박이로 70년 가까이 살았고 아버지는 충남 당진에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인천으로 올라와 50년 정도 살았는데, 늘 당진이 고향이라고 하면서 필요할 때 인천을 찾는다. 이럴 때 보면 우리 집 둘째 딸과 성향이 비슷하다.



 

 대한민국의 큰 갈등 중 하나가 지역감정이다 보니 지역을 거론할 때는 늘 조심스럽다. 학연과 더불어 지연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그래도 난 학보다는 지연 쪽으로 치우치는데, 학연은 주로 대학 이상 인연의 공통점이지만 고향은 조금 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인연이다 보니 더욱 측은하다.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화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외국인을 만나면 우선 국가를 물어보고 그다음에 주나 도시를 물어본다. 보통 대한민국은 잘 알고 있는데, 인천이라고 하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서 그럴 때마다 '니어 서울'을 이야기하거나 '인천 에어포트'를 말한다. 이럴 때는 조금 속상하다. 내 고향은 서울 옆에 있는 두 번째 도시이고 대한민국을 방문할 때 거쳐 가는 공항이 있는 도시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주변에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많은데, 처음 만났을 때 대부분 고향이 인천이라고 하면 서울과 포함한 합집합의 의미 수도권이라고 표현한다. 강원도 출신으로 내가 좋아하는 무식한 동료는 그냥 경기도나 서울로 묶어 버린다. 내가 광주광역시를 전라남도로 묶었다가 아내에게 가끔 혼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아무튼, 두 번째 도시 아니면 조연, 그게 인천의 이미지다. 어쩌면, 나와 같다.


 그나마 요즘에는 좀 나아졌다. 과거 모 방송국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범죄의 도시', '이방인 도시', '못 사는 도시'의 이미지였는데, 송도 국제도시와 인천공항의 선전으로 '국제도시', '세계와 소통하는 도시', '교육의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얼마 전 아내와 고향을 다녀왔다. 널리 알려진 신포시장의 닭강정을 사러 가는 중에 동인천역을 막 지날 때의 상황이다. 차창 밖 인천의 도시 풍경을 보면서 아내가 말했다.


"인천은 참 다채로워! 송도나 인천 공항은 깔끔한데, 이쪽 동네만 오면 오래된 도시 같네!"


"응. 그치.(누군가가 인천 사투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도 여기가 나 어렸을 때는 인천의 중심지였어!"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끌벅적하던 곳이었는데, 토요일 점심시간에도 한적했다. 동인천은 부평, 주안과 함께 인천의 3대 성지였다. 1호선 전철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학창 시절의 대부분의 추억과 아픔까지도 그곳에 많이 남아있다.

 난 남동구의 작은 동네인 간석동에서 전철을 타고 제물포역에 있는 장군 출신 형제 이름의 앞글자를 딴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러다 보니 제물포역과 가까운 동인천과 주안 일대에서 많이 활동했는데, 유독 동인천에서의 추억이 많고 애착이 간다. 지금은 사라지거나 많이 변했지만, 당시 유명했던 '대한서림', '심지 음악감상실', '애관극장', '배다리 헌책방거리', '양키시장' 등을 지날 때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금은 오히려 신포시장과 차이나타운 쪽 북적거리지만, 당시에는 동인천역 일대가 중심가였다. 그나마 배다리는 드라마 도깨비나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어 많이 알려졌고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생겨서 명맥을 유지한다. 하여튼 동인천은 누구나 알고 있는 아픔의 장소이면서 추억이 많은 동네다. 한 때는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옛 영광을 뒤로한 채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는 이인자 또는 조연 같은 이미지의 인천과 비슷하다. 어쩌면, 나와 같다.




 천만 명이 넘게 사는 서울은 사람도 많고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부산은 진짜 두 번째 도시이고 최대 항구 도시이며, 경상도 지역 최고의 도시이다. 다른 광역시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대표성을 가진다. 작은 중소도시들은 나름 그곳의 특징을 가진다. 작년에 경상북도 영양군을 살면서 처음 알았다. 인구수가 1.7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시인데, 주변 동료 중 그곳 출신이 있어서 알게 되었다. 참고로 강남구가 53만이다. 자신은 희소해서 더 좋고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소도시일수록 유독 애향심이 강하다. 어디서 만들어 냈는지 모르지만, 지역의 나무, 꽃, 동물 심지어는 색깔까지 정해져 있는 곳도 있다. 인천은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서 유독 애향심을 강조했고, 그 영향으로 동창들을 만나면 고향 예찬을 한다.


 연예인 중에도 인천이 고향인 사람들이 방송에서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한다. 3백만이 넘게 살다 보니 연예인이 많기도 하지만 매체에 나오는 사람마다 고향 이야기를 자주 하다 보니 동인천에 있는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개그맨 3명이 동창인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왜 그것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들 주인공보다는 조연의 이미지가 크다. 내 고향 인천이나 나처럼.


 두 번째 도시, 조연 같은 인천과 함께 이십 년을 살았고 그 후로 이십 년을 지켜보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운동장역이 지어졌을 때도 우뢰매와 영구와 땡칠이를 관람했던 인천 시민회관이 철거될 때도 함께 했고 지역 야구 연고팀인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을 하고 다른 지역으로 갔을 때도 같이 있었다. 대형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의 슬픔과 2002년 사상 최초 월드컵 16강을 확정한 포르투갈 승리의 기쁨도 아직까지 남아있다. 내 고향 인천은 두 번째 도시임에도 희. 노. 애. 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최고와 제일보다 조연과 두 번째가 좋아졌다. 나는 둘째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도 둘째다. 게다가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도 둘째다. 큰딸 세영이에게 미안하지만, 그러다 보니 두 번째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제는  앞에서 밝게 빛나는 것보다 조금 뒤에서 바라보며 따라가는 게 좋다. 질투와 시기의 많은 화살을 앞에서 대신 맞아 주기 때문에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게다가 나름 선두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내 고향 인천이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어쩌면, 나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