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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Feb 23. 2022

어제 그리고 오늘과 내일

어제.


크게 아팠다. 자만심이 불러온 결과이다.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 있다는 생각과 대수롭지 않다는 마음가짐에서 기인했다. 글로 남길 여력이 없을 정도로 몰입해도 부족할 텐데, 다시 끄적이는 자신을 돌아보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게 확실하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수준도 낮기 때문이라며 주변을 업신여기던 생각을 버려야 했다. 나를 가장 위에 올려다 놓은 거만함이 오감을 틀어막았다. 듣고 느끼며 봐야 했는데, 거만으로 쌓인 플라스틱 용기는 공기의 흐름을 차단했다. 뱉어내기 전에 들어오는 것부터 잘 스며들게 해야 한다. 부족한 만큼 채워야 하는데 공기가 부족하다. 숨이 막힌다. 들숨과 날숨을 잘 헤아려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숨을 쉴 수 있다. 큰 숨을 쉬고 싶다면 속에 있는 한숨을 다 꺼내고 힘껏 들이마시면 된다.


잘못된 상항에 대해서 누군가 네 탓이라고 소리치는 것도, 믿었던 동료의 잘못된 행동도, 우려했던 슬픔이 현실이 되는 상황도, 나를 무너뜨릴 순 없었다. 대수롭지 않다로 장착한 강한 내면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아픔과 슬픔은 세상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가 딸에게 건넨 슬픈 몇 마디에 고개는 숙여지고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렇다고 곡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목이 메고 눈가만 촉촉해졌을 뿐이다. 슬픔이 몰려와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린 말은 단지 딸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뿐이었다. 우리들만의 축제를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아이 울음은 결국 아내와 나를 태웠다.


많은 것을 내려놓았음에도 이십여 년간 버텨내면서 익힌 것들이 뇌를 자극하여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어느 쪽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에 한숨만 가득해졌고, 지친 머리와 어깨에 피로만 쌓인다. 잠시 잊으려고 노래를 듣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냥 안녕하기만 바랄 뿐이다. 모두가 안녕하여 조금 더 평온하면 좋을 텐데, 어지럽다. 우선 잠부터 청해야겠다. 다른 세상이 보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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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7시 20분에 기상했다. 평일 이 시간에 일어난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어찌 되었든 말 그대로 풀 취침을 했다. 모든 스트레스는 훨훨 날아갔고 내 본연의 모습이 잘 보인다. 출근시간이 삼십 분 늦어졌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출근하여 평소와 다르지 않게 차분한 오전을 보내고, 오랜만에 차를 타고 멀리 돌아봤으며, 사무실로 돌아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웃다 보니 좋은 소식도 들린다. 큰 딸 생일에 다 같이 쉬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들기 전에 푸념을 글방에 남겼는데, 친구들 걱정이 한가득이고 위로 글이 넘쳤다. 그곳에서부터 꿈틀대며 나온 기운이 삶을 기적처럼 되살렸다. 결국, 눈 한번 오래 감고 일어났더니 모두 해결되었다.


너작마약에 헤롱 거리는 날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냥 헤롱헤롱 살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내가 아등바등하거나 마음 편히 먹으나 똑같이 흐른다. 아침 회의를 하려고 수첩을 들다가 안에 있던 내용물이 떨어졌다. 엽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엽서에 새겨진 글자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엽서 옆에 떨어진 다른 종이도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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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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