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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in Oct 22. 2023

'폭탄'돌리는 사회와 학교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아이들과 선생님들


#폭탄돌리기 #나만아니면돼










“돼지보다 못한 XX” 폭언 교사, 학부모 면담 후 또 폭언뉴스 내용5학년 초등학생들에게 폭언을 한 것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교사가 문제제기를 한 학부모와의 면담 후 다시 5학년 학생들에게 폭언을 한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경상남도의 한 초등학교 학생의 진술서. 연합뉴스 26일 경남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번 폭언 사달은 지난 13일 처음 확인됐다.   도내 한 초등학교...출처세계일보







터질 것이 터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만남은 대체적으로 건강하기 어렵다.


직장도 마찬가지며, 학교는 이런 사회적 현상, 그 진앙지일지도 모른다.



학생을 향한 폭언 그리고 교사를 향한 폭언


사실 폭언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폭언이 나오기까지, 교사가, 혹은 학생이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교실에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물어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학교가, 교실이, 더 나아가서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



'교실붕괴'담론은 최근만의 일이 아니다. 대입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진 교육체제 때문에 사실 중등학교 교육에서의 파행은 눈 감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행해지는 어떤 교육이라도 입시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 없다. 그 길이 옳은지 그른지 보다는, 그 길이 빠른지, 혹은 효과적인지를 물어보는 게 맞는 곳이 바로 학교 교실이다. 



위 기사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5학년인 학생에게 수차례 폭언을 했고, 학생과 학부모는 이것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결국, 해당 교사는 1천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막말하는 교사와 그로 인해 피해 받은 학생에 대한 이야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거슬러올라가 본다면 해결책이 없는 난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다른 난점들을 차지하고서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교사-학생 간 관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스크랩한 기사는 본 논의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며, 그저 무너져가는 건물에서 떨어져 내리는 잔해처럼, 교실붕괴의 한 측면을 보여줄 뿐이다. 



교사의 권위는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왔다. 베버가 분류한 권위의 종류에 따르자면, 과거 교사가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된 권위는 이런 '전통적 권위'이다. 이러한 권위는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권위로서, 유교를 숭상했던 과거 조선시대로부터 최근까지 교사가 가졌던 권위다. 사실상 우리가 권위라고 일컫을 땐, 베버의 분류 중 '전통적 권위'를 의미하는 것인데, 다른 권위들도 먼저 살펴본 후 논의를 이어가도록 해본다. 



전통적,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전통적 권위와는 다르게, 해당 직책이나 지위에 의해 공적으로 인정되는 권위로서 '전문적 권위'가 있다. 이러한 전문적 권위는 법률이나 체제에 속한 한 개인의 역할 때문에 인정받는 권위이다. 예컨대, 공공행정의 실행 주체로서 공무원의 권위를 들 수 있겠다. 한편, '카리스마적 권위'가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된 두 가지 권위들처럼 관습이나, 역할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특질에 의해 생성되는 권위다. 흔히 '그 사람은 카리스마 있다'라고 할 때, '카리스마'는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 혹은 공헌이나 헌신으로 인해 개인이 획득한 권위에서 나오는 무엇인가를 뜻하는데, 이때 표출되는 것이 '카리스마적 권위'인 것이다. 



과거 교사들은 위 세 가지 권위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존재였다. 물론, 카리스마적 권위는 개인에 따라 소유하기도 하고 그렇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전달 중심의 교육체제에서 지식의 독점자로서 교사는 대체적으로 카리스마를 소유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2022현재 한국의 공교육체제에서 교사가 갖고 있는 권위는 공무원으로서의 권위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의 가장 말단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으로서 교사가 최근 대중들이 생각하는 교사들의 모습이자 요구하는 역할이다. 대입을 위한 공부는 사교육을 통해 해결하되, 학교는 하나의 보육기관처럼 일정 시간 학생들을 맡아주는 기관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가만히만 있어도 존경받았던 과거가 아닌 가만히만 있어도 욕먹고, 무언가를 해도 욕먹는 사면초가의 형세- 교사들은 다급해진다. 구석에 몰린 생쥐처럼 생존에 위협이라도 받은 양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폭언은 이런 위협에 또 다른 형태의 위협으로 응수한 것이다.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을 대상으로 자행된 폭언의 궁색함을 말하는 것이다.



일리치와 라이머가 비판하듯, 2022 우리의 학교는 그 네 가지 기능-보육, 학습, 선발, 사회화-중 학습을 가장 등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배움과 성장이 목표인 학습은 징치적, 정책적 캐치프레이즈에 다름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실은, 교실 안의 교사는, 또 학생은 어떤 관계성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그 관계성을 밝혀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시한폭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제행동을 일으키고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학생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교사들에게 있어 이 학생은 '폭탄'이다. (실제로 학생들을 분반하여 진급시킬 때도 이런 학생을 소위 '폭탄'으로 부른다.) 올해에 내 반에만 배정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이다. 폭탄이 배정된 담임은 한 해가 고되다. 말 그대로 문제가 언제 '터질지'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위 기사에서 본 교사도 일종의 '폭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그가 학생에 대해지닌 그릇된 태도와 그로 인해 비롯된 행동 때문이다. 학교에는 여전히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성교육법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은 교화의 대상이며, 도덕이라는 사회적 규칙에 입문시켜야 하는 어린 존재인 것이다. 이 같은 학생에 대한 개념 규정은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에 대한 우월감을 갖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힘이나 권력의 차원에서 우월하거나, 혹은 본인이 우월하다고 믿는 쪽이 폭력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군부가 혹은 군대만큼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 상대 집단에게 가한 폭력이 이를 증명한다.



터질 것이 터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비유적 의미로 쓰인 '폭탄'은 대개 폭발 시간이 정해져있는 '시한폭탄'인데, 무서운 건, 이러한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 앞에서만 안 터지면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수십 년간 돌려 온 폭탄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있다. 폭탄 교사, 폭탄 학생에 대한 개인적인 비판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화풀이식으로 던지는 감정의 배설이라면 우리는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내 앞에서 터지면 어떡하지?





물론 폭탄이 내 앞에서 펑 하고 터질, 그런 확률은 낮다. 그렇다고 그 확률은 아예 '0'이 아니다. 



최근 폭탄 교사나 폭탄 학생의 사례가 빈번히 보이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낮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불우한 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했다는 의미, 혹은 어떤 사건이 발생할 확률이 그 자체로 커지고 있다는 의미. 사회가, 또 그 안의 교육이 수학적 확률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 보는 것은 해결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일말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어느 쪽이든, '폭탄'은 해체해야한다. 내 앞에 온 폭탄을 재빨리 옆자리로 넘기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자식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폭탄은 해체되어야 한다. 단,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말이다. 개인에게 폭탄을 해체하라고 떠넘기는 게 현재의 교육행정이며, 그런 교육행정에 사보타주로 답하는 것이 '공무원 교사'이다. 피해자는 결국 우리 자식이고, 우리 자신이다. 









© 95C,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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