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나는 음악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날 사랑해줘

by just in
나는 장조 나는 단조 나는 화음 나는 멜로디~


내 인생에 하나의 분기점을 설정할 수 있다면 '뮤지컬 모차르트'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2010년 초연 후로 매 시즌마다 인기를 더해가는 '뮤지컬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생애를 흥미롭게 그린 오스트리아 원작 뮤지컬이다. 신동이라 불렸던 그에게도 인간적인 고뇌가 있었음을 그 고뇌가 그를 평생 옥죄는 굴레가 되었음을 보면서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신동도 아니고 엄청난 고뇌가 있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런 내가 감히 모차르트와 동질감을 갖다니! 어불성설인 줄 알지만, 그래도 나와 그에게는 공통적인 고뇌가 하나 있다.


1.jpg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날 사랑해줘!


뮤지컬 속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레오폴드를 따라 연주여행을 다녔다. 그의 신묘한 작곡과 연주 솜씨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귀를 아주 즐겁게 해 주었다. 작품 활동, 창작이란 것은 본디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철저한 후원자와 피후원자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식곡 생산은 모차르트로 하여금 작품 활동에 염증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못 먹는 술도 마시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리면서 그들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을 하기에 다다르는데, 그때 부르는 뮤지컬 넘버가 바로 '나는 나는 음악'이다.


나는 시인이 아냐 난 시인처럼 말도 못 해

그저 떠오르는 대로 그저

내 마음 가는 그대로

난 화가도 아냐

빛과 어둠 아름다움도 그려내지는 못해

난 꿈속에서만 희망 그리지...


나는 위의 가사처럼 정말 시인도 아니고, 화가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나일뿐이다. 청바지의 원조, 리바이스의 철 지난 광고 카피처럼, 단지 '나는 나'일 뿐이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하나씩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할과 호칭들이 덧씌워지기 마련이다. 남자, 그리고 아들. 이 두 가지 아마 나에게 가장 처음으로 덧씌워진 호칭이 아닐까.(그리고 아마 가장 마지막까지도 나는 남자이며 아들일 것이다!) 그 이후에 나에게 부여된 새로운 호칭은 학생이었고, 그 이후로는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이 된 이후로는 종종 부장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호칭만큼 권한이나 권위가 있지는 않다. 그냥 일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나하나 호칭이 나에게 부여되면서 나는 나도 모를 중압감을 쌓아갔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내가 그 사람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압박은 생각보다 지속적이며 끈질기다. 내가 그 호칭에 맞는 역할을 하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쳤지만 그럴수록 원래의 나랑은 괴리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가사 속의 모차르트와 나는 둘 다 있는 그대로, 내 자체로 사랑받길 원하는 어린아이였다. 나의 어떤 노력이 또 그 노력으로 이루어진 어떤 성취로 인한 인정이 아닌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만하길 원한다. 사랑을 받아오는 대상은 남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 도있다. 그 대상에 상관없이 나를 나로서 바라보고 인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극 중 모차르트는 목놓아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노래는 나의 20대에 바칠 헌정곡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먼저, 나는 20대 마지막 날까지 나는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듣고 또 불렀다. 계속 듣자 듣자 하니, 나도 부르고 싶어 졌고, 자꾸 흥얼대다 보니 크게 소리 높여 부르고 싶었다. (노래방에 쓴 돈을 모아 보면 아마 차 한 대 값은 될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저렴한 코인 노래방이 없었고, 차는 경차를 기준으로 했을 때이다.) 또,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다. '지루한 것 정말 질색이야 싫어.'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진학지도 시 꿈을 물어보셨다. 뭘 하고 싶냐고 해서, 뭘 하기 싫은지는 이야기했다. 바로 공무원이었다. '젊은이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평범함'이라는 중2병식 발언과 함께...


신동으로, 촉망받는 천재 작곡가로 정말 음악에 한 획을 그은 모차르트였지만, 그의 마음 한편엔 언제나 '자유'가 있었다. '난 포르테 난 피아노 춤과 판타지' 그렇다. 바로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한 진정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몰아치다가 때로는 쥐 죽은 듯, 날뛰고 널뛰는 춤과 환상이 가득한 세상. 그것이 바로 그가 원하는 음악이자, 삶의 정수다. 그리고 나도 이러한 삶을 살고 싶었다. 천재들이 요절한다는 서른세 살 이전까지, 나는 내가 천재, 아니 천재가 아니더라도 천재 후보자쯤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다섯이 되어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걸 보면, 그리고 평범한 삶에 누구보다 잘 적응한 걸로 봐서는 천재도, 천재 후보생도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 온 삶, 즉 자유롭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삶은 나와 모차르트만이 바라던 삶의 모습은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동경해 온 그런 모습의 삶. 그야말로 이상, 그 이상그이하도 아니었다. 꿈과 환상의 나라인 에버랜드,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롯데월드가 어릴 적 놀이동산 일지 몰라도, 진짜 삶을 매일 살아내야 하는 어른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삶은 꿈을 먹고살지만 환상은 독이었고, 모험을 감수하기엔 삶은 신산했다.


2.jpg 현실은 모험과 신비, 꿈과 환상의 나라와는 다르다.


어렸을 땐 '하루하루 산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다. 못 죽어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직업을 갖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라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었다. '하루하루'와 '산다' 사이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행복하고 기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사히'나 또는 '떳떳하게'라는 말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닫는다.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정 욕구'를 지니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이러한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는 나를 나 스스로가 인정하고 싶다. 나에게 부여된 여러 역할이나 호칭들이 아닌, 그저 나라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나를 긍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나의 욕구에 충실해야 한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마지막 넘버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마무리된다.


어떻게 그림자 잃고 어떻게 운명 거부해

어떻게 자신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 되나

누구에게 물어봐

스스로 이해 못 한 건

어떻게 그림자 걷어내고 그 자유 찾겠나


나는 나여서, 아름다운 것이다. 내게 어떤 역할이나 호칭(그림자, 운명)이 주어진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운명에 순응하거나, 아니거나


과정은 복잡할지라도 선택은 결국 둘 중에 하나다. 단지, 나는 그 결과에 책임을 질뿐.

나는 후자를 택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의 과정이 결코 쉽거나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눈 이런 나의 마음들을 나누고 싶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런 전후 사정과 맥락을 공유해보려고 쓰여졌다해도 넘치지 않는다.






이전 01화0화. 안 행복해서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