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술 권하는 학교

집단지성? 집단주성!

by just in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과 그 소망이 나의 소망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나의 첫 직업은 교사이다.(첫사랑이 있으면, 끝사랑이 있다. 그렇다. 나는 나의 끝 직업이 첫 직업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교사를 희망하기보다는 공무원을 희망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 희망직업 리스트에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나의 적성검사가 이쪽 계열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한다.(지금 시점에서 이 말을 확인할 길을 없다. 하지만 굳이 부모님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고, 또 나의 성향도 부모님이 말한 적성검사의 결과대로 선생님과 어울렸다.)


사실 나에겐 희망직업 리스트라는 게 없었다. 내 진로는 중학교 때부터 법조인이었고, 그 이후로 마지막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 마지막 순간이란, 교대에 합격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나를 부둥켜안았지만 나는 왜 기뻐야 했는지 잘 몰랐다. 일단 한 번도 목표로 한 대학이 아니었고,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는 직업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으며, 무엇보다 선생님에 대한 나의 열망이나 로망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년, 재수생활 동안 꿈꿔온 법조인의 법복을 입은 모습이나, 판사봉으로 판결을 내리는 모습들 그리고 정의감에 찬 검사의 모습들과 교단에선 선생님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2.jpg 법조인을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출처: 넷플릭스 소년심판)


함께 수험생활을 하던 친구에게 이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왠지 잘 어울리는데? 너 잘할 것 같아!' 다니던 학원 선생님도 같은 반응이었다. 맞아! 네가 그런 섬세한 면들이 있지! 잘해봐!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 중 나 자신도 있다. 나는 내 몸에 살고 있되,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자아는 아주 일부분이다. 잠재의식과 뇌에 대한 연구가 이를 말해준다. 부모님의 등살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게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응원을 받은 나는 일단 입학해보기로 했다.


왠지 잘 어울리는데? 너 잘할 것 같아!


술은 내 앞에 마주 앉은 사람들과 나의 무의식을 동기화해주는 어떤 촉매 같았다.

성인으로서 처음 맛보는 술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전에 미리 동기들끼리 만나는 자리에서 선배가 따라준 술이었다. 사실, 인생 첫 술맛은 아마 어릴 적이었던 것 같다. 노란색 액체와 하얀색 거품이 일렁이는 맥주잔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아버지가 음주를 친히 윤허(?)해주셨던 어린 날들이 있었다. 그땐 쓰고 텁텁한 맛이 무엇이 좋아 그렇게 들이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술을 한두 잔 마시다 보니 금세 이해가 되었다. 술은 술 자체를 마시는 게 아니었다. 술은 내 앞에 마주 앉은 사람들과 나의 무의식을 동기화해주는 어떤 촉매 같았다. 오랜 수험생활로 우울하고 외로웠던 범생이들은 어느덧 술 한 잔으로 모두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 술은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들이 이어졌다. 선배, 후배, 동기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만큼 즐거운 것은 없었다. 마치 원시부족이 된 것처럼 어둡고 습한 술집에 모여 앉아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물론 대개가 헛소리들이었지만, 그중에는 헛소리라고만 하기엔 어려운 깨달음들도 여럿 있었다.(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일 뿐!) 이러한 음주문화는 교생실습 때도 이어졌고, 정식 교사로 발령받아온 학교에서도 재현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마시고 또 마셨다. 문제는 내가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밤늦게까지 선배 교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내일이 되었다.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시다 보니 내일이 없어지고 오늘이 된 것이다! 그렇게 술에 취해 들어온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숙취에 시달렸다. 한 번은 회장 선거날이었다. 속이 너무 안 좋아 메신저로 어제 함께 술을 마신 선배에게 메신저를 보내 놓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회장실에서 어제 먹은 음식들을 차례대로 확인 중이었는데, 나를 찾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차를 타고 나는 집으로 실려갔다.


물론 대개가 헛소리들이었지만, 그중에는 헛소리라고만 하기엔 어려운 깨달음들도 여럿 있었다.
4.jpg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출처: 게티이미지 뱅크)


위의 일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과음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3년을 내리 술만 먹다가(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일했다.) 군대에 갔다 2년 만에 돌아온 학교는 정말 다른 곳이 되어있었다. 2년 간 '미투 사건'이 전국을 휩쓸며 구태의연한 조직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온 후였다. 사실상 회식이라는 문화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최소한 내가 몸담고 있었던 곳은 그랬다.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굳건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다양한 변수들이 있었다. 술을 좋아하던 카리스마 있는 선배는 이미 다른 학교로 전근 간 후였고, 내 나이 또래에 동기들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모두 학교를 떠난 후였다. 그래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온몸으로 회식에 '회'자도 꺼내기 싫어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한국 사람들의 회식 사람만큼 한국 선생님들의 회식 사랑도 알아줬다. 공식적 인부터 열거해보자. 먼저, 학교에는 친목회가 하나씩 조직되어 있고 각 구성원들은 모두 친목회의 구성원으로 자동(?) 가입된다. 친목회의 회장은 주로 교무나 연구부장이 하는 것이 관례이며, 이들은 중간에서 교직원들과 관리자들 사이의 교두보 같은 역할을 한다. 개학 후 일주일 이내에 친목 회식을 시작으로 한 학기를 시작한다. 학부모 공개수업은 5월즘있다. 학교에서 하는 연례행사 중 가장 중요한 몇몇 행사 중 하나로, 학부모들이 학교로 와서 참관을 한다. 이러한 고된(?) 행사를 마치고 또다시 한 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다. 이외에도 많다. 체육대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행사들에는 언제나 뒤풀이 형석의 회식이 뒤따랐다. 친목회 이이에 동문회 또한 조직되어있어 이 동문회를 주축으로 또 많은 횟수의 회식이 진행되기도 한다. 또한, 각 학교별 교직원 운동모임이 있다. 배구면 배구, 배드민턴이면 배드민턴, 퇴근 후 체육관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먹는 맥주 한 잔은 정말 잊기 힘들다. 특히 연말연초, 그리고 인사 이동철에는 맞이하고 보내는 마음으로 하루 걸러 하루씩 회식이 있는 주간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의 회식 사람만큼 한국 선생님들의 회식 사랑도 알아줘야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회식과 친목모임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정말 신세계였다. 그러나 조금은 슬픈 신세계. 그러다 코로나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하며 회식은 이제 정말 입밖에도 내기 어려운, 존재는 하나 실제 하지는 않는 그런 사어가 되어버렸다. 시원섭섭했다. 이제 더 이상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됐었고, 또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사람들 간 느낄 수 있는 정이 사라져 갔다. 교사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교실에서 혼자 수업 준비를 하고 업무를 하다고 퇴근한다. 마주치지 않으려면 정말 하루에 한 명도 성인과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구조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가끔은 뭔가 외로움보다 한 단계 높은 느낌의 감정을 받곤 한다. 세상의 중심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신규교사들이다. 그들에게는 회식이 필요하다.



pc방이 우후죽순 처럼 생겼어도, 게임을 못해 총 쏘는 게임까지 멀리하던 나는, 군대 훈련병 때 알았다. '영점 조정'이라는 군대 용어를. 표적을 정확히 맞히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화기가 어떤 궤적으로 날아가 표적의 어느 부분을 맞추는지 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격을 영점 조정 사격이라고 부른다. 대개 자신의 총기를 지급받고, 본 사격 전에 실시한다. 무조건 많이 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부사수가 외쳐주는 피드백(상탄! 하탄!)을 통해 영점 조정을 한 후에야 제대로 된 표적사격을 할 수 있다.


신규교사들은 자신들의 발문(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교사의 발화)이 학생들을 사고하게 하는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들의 총은 아직 영점 조정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회식은 일종의 '영점 조절'이다. 회식자리에서 술잔이 돌 때마다 선배들의 이야기 봇다리가 열린다. 교실에 전화기가 없었던 시절부터 처음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 교원능력 평가가 어떻게 실시되었는지도 선배들의 기억은 하나의 아카이브다. 또, 선배는 부사수다. 오늘 하루 동안 혹은 한 학기 동안 내가 해온 학급운영이, 교육적 처치가 적합했는지, 아닌지를 그들의 경험에 비춰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에게 회식은 단순히 음주만을 위한(물론 그런 선생님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있다. 회식을 위한 회식. 친목을 윈한 회식.) 하나의 전통을 전수시키는 장이자, 자신의 위치를 영점 조정하는 기회이다.


1.jpg 사격 전 영점 조정은 필수다.(출처: https://blog.daum.net/ny25a/963)


학교에는 공식적인 온보딩 프로그램(신입 사원이 효과적인 조직 구성원 및 내부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및 행동을 습득하는 메커니즘을-위키백과)은 없다.(연수원에서 진행하는 1주일짜리 신규교사 연수를 온보딩이라고 말한다면 부끄럽다. 그것은 신규교사를 위한 자리이기보다는 공무원으로서 교사에 대한 연수일 뿐이고 그 마저도 너무 빈약한 커리큘럼과 짧은 연수시간으로 제대로 된 온보딩은 어렵다.) 학년 단위로 느슨하게 연결된 학교의 조직 특성상 신입사원 혹은 신규교사 교육은 같은 학년에서 이루어진다. 좋게 말해서 멘토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맨땅에 헤딩하기다. 매년 학교 상황에 따라 업무분장이 바뀌고, 5년 혹은 4년에 한 번씩 전근을 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전임자의 인수인계를 받기란 쉽지 않다.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폴더 하나에 파일 몇 개가 전부인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신규교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맨 땅에 헤딩으로 일을 배운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에서 최근에는 온보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신규교사들에게 학급운영과 행정업무는 어렵다. 매일 줄을 이어 올라오는 업무 관련 질의사항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국에 다시 회식을 하자고? 그 뜻은 아니다. 업무를 정(情)과 관계에 기반해 처리하는 시대는 지났다. 대신 정확한 매뉴얼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신규라는 이유로 일을 몰아주지 않는 합리적인 업무분장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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