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직업의 특성상 여초 사회인 교직사회에서(특히 초등, 특히 수도권) 신규교사로 남자가 온다는 것은 학교에게 큰 의미가 있다. 마치 원시인에게 '맥가이버' 칼이 생긴 기분이랄까. 이미 정해진 업무분장을 뜯어고치기도 한다. 학교에서 남교사는 일당백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많은 남교사들이 이런 기대에 부응한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경험일 뿐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혹시 사물에 감정이입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맥가이버 칼의 입장을 생각해 봐주시라. 이 이야기는 맥가이버 칼이랑은 태생 자체가 다른, 아예 칼도 아닌 쇠붙이(?)나 스테인리스 정도의 내가 만능 맥가이버 칼이 된 이야기이다. 아니 되어야 했던 이야기다.
내 고향은 실로, 온실이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맏아들로 평생을 살아왔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지만, 집에는 항상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다. 조부모님들에게 큰 손자는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 거나한 것은 상상도 못 하셨을 테고 심지어 내가 배가 고픈 것조차도 끔찍하게 생각하셨다. 이런 과보호 아닌 과보호를 받고 자란 내가 맥가이버처럼 전천후 일리가 없다. 일 년 내내 비슷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온실에서 스스로 밥벌이를 하거나 일찍 철이 들어야 하는 시련들 없이 유년기를 보냈다.
나는 한 번도 바다로 나가보지 못한, 그러나 자유를 갈망하는 '뿌리 깊은 잡초'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난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온실 속에 잡초'이다. 몸은 온실 속에 있지만 그 안에서 내 나름대로 여러 시도를 하며 살았다. 나름대로 반항도 해보고, 하루짜리 가출도 여러 번 했다.(문제는 그것이 가출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소소하고 시시한 반항과 가출이었을지언정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런 작은 일탈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내가 혼자 모험이다 뭐다 해서 겪은 모든 것들이 사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일이었다. 아무리 날고뛰어도 온실이었다.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나는 한 번도 바다로 나가보지 못한, 그러나 자유를 갈망하는 '뿌리 깊은 잡초'였다.
이런 연약하고 어쩌면 나약한, 나에게 첫 출근부터 나에게는 너무 많은 일들이 주어졌다. 동기였던 누나와 비교해보자면 두 세배는 많았을 것이다.(학교에서 일의 양을 단순 비교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익창출이 최대 목표인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학교는 학생을 중심에 두고 움직인다. 그렇기에 학생 교육에 있어서의 업무의 강도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행정업무로 초점을 놓고 본다면, 비교가 가능해진다. 작성한 기안문의 개수와 계획하고 보고한 문서들의 개수가 그 사람의 행정업무의 양이다. 나는 여기서 행정업무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행정업무 이외에 청소년단체도 부가 업무로 편성되어 있었던 시절이므로, 나는 '담임업무+행정업무+청소년 단체'까지 3중고를 치러내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각종 행정업무와 주말이면 청소년단체 활동도 다녀야 했다. 당시 나보다 8살 정도 많은 형이 한 명 있었는데, 그 형은 나보다 더 했다고 했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아 남자는 일을 더 많이 하는구나. 그리고 모두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구나.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한 해 한 해 지나가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에서 뿌리 깊은 잡초는 조금 가벼워졌다. 무거운 흙을 털어내고, 숱가위로 숱을 치듯 내가 땅에 내렸던 많은 생각들이나 습관들이 재정립하게 된 2년 간의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도 개운했다. 밀린 방학숙제를 해낸 기분이랄까.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간 새로운 학교는 달라진 게 없었다. 새롭지 않았다. 구성원들만 바뀌었 뿐 군입대 전 학교, 그 모습 그대로였다.
3월 초, 그날은 봄이라고 생각될만한 그런 날이었다. 창문을 닫고 있자니 답답해지는 날이었다. 잠깐 다가온 봄에 넋이 나가 있는 동안 방송이 나왔다.
아아 교무실에서 알립니다. 전교에 계신 남자 선생님들은 지금 당장 교무실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교무실에 헐레벌떡 내려가 보니 나를 비롯한 서너 명의 남자 선생님들이 내려와 있었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군대에서의 집합에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 전에 전체 집합이라니... 파티션 너머의 교감선생님이 일어났다. 자! 날도 따뜻하고 하니 우리 텃밭 정리나 해볼까? 우리 막 전역한 군인도 있고 하니! 그때였다.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에 들었다. 군대에서 배운 학습된 무기력이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왜 남자 선생님들만 부르셨나요? 교감선생님!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버린 말에 놀라는 사이 다른 선생님들도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텃밭은 각 반별로 다 있는데, 왜 남자들만 나가서 일하나요? 아직도 서로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이 멈춰있던 그 장면이 생각난다.
왜 남자 선생님들만 부르셨나요? 교감선생님!
이 좁디좁은 지면에서 여성과 남성의 편을 갈라, 서로의 의무와 권리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남녀 성별의 구분을 따라서, 쓸모를 정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 쓸모의 정체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관리자의 입장에서, 혹은 학교라는 행정조직의 운영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학교조직에서 말하는 효율성은 기업에서의 '효율성'과는 다르다.)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업무 연관성이 큰 것들을 부장이라는 이름을 단 보직교사들에게 몰아주고, 그들만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학교에서의 효율성이다. 물론, 이것은 정말로 효율적이다. 단, 그 많은 일을 몰아 맡은 교사가 존재하기까지는 말이다. 어떠한 이유(정기적인 전보발령이나 개인적 사유로 인한 휴직, 병가 등)로든 그 자리가 비는 경우가 생기면 그야말로 그 효율성이란 허물은 허물어진다. 하루아침에 붕괴된다. 대신 일해 줄 사람을 찾다가 싸움이 나고, 아무리 회의를 해도 대체자를 찾을 수 없어, 새싹 같은 신규들이나, 타 지역에서 잠시 파견 온 교사들이 덤터기를 쓰기도 한다. 때로는 이미 너무 많은 일에 허덕이고 있는 '착한' 부장들이 대신 짊어지는 경우도 있다.
많은 교사들이 스스로의 '쓸모없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나는 승진 안 할 거라 부장 경력 필요 없어서 안 해. 나는 부장 경력이 없어서 못해, 나는 나이가 많아서 못해. 나는 나이가 어려서 못해. 나는 여자라서 못해, 나는 남자라서 못해, 나는 애기가 있어서 못해. 나는 애기가 없어서 못해. 나는 나는 나는. 못해. 못해. 못해. 결국, 떠나고 싶은 사람, 떠날 때가 넘은 사람을 붙잡아 일을 시키고, 발령받은 지 하루도 안된 신규들에게 그 일이 돌아간다. 효율만 앞세우며, 매년 희생양을 찾아 헤매던 관리자들, 그리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아 나기 위해 '나만 아니면 돼'를 외쳐오던 교육현장의 민낯은 이토록 처참하다. 최근에는 누구나 공평하게 행정업무를 나눠 맡는 혁신학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손뼉 칠 만한 일이다.
사람은 물건처럼 불러다가, 앉혀다가, 억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에겐 쓸모를 논해서는 안된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의 쓸모는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질 수 없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