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쉬운 길, 쉬운 삶

공부족은 아닙니다만

by just in

공부족. 공부하는 부족이 아니다. 부부 모두 공무원인 부부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최근 신규 임용된 공무원사회에서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풍습이 강화되었다는 기사(세계일보, ‘끼리끼리 결혼’ 넘쳐나는 공무원 가족… 공직 인사원칙 흔든다 [S 스토리])를 접했다. 역사적으로 동질혼은 드물지 않은, 아니 아주 흔한 일이었다. 교사들 간 동질혼도 마찬가지이다. 선생님도 같은 선생님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어 한다.(물론 개인 취향 차이가 존재한다. 대개 그렇다는 것이다.)


남교사의 90%는 여교사와 결혼한다.라고 써놓고 보니 어떻게 증명할 수도 없고 통계를 찾아봐도 명확하게 나온 결과가 없다. 그렇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나의 귀납법에 의한 결론이다. 그러니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남교사는 대부분 여교사와 결혼한다.(이렇게 초안을 써놓고 보니 통계가 실린 신문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교육공무원 중 27.1%가 부부공무원이라고 하니 이런저런 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약 1/4은 부부교사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공교롭게도 1/4은 남자 교원의 숫자이기도 하다.)


내 경험을 비춰본다면 위 문장은 사실이다. 가장 친한 남자 동기 네 명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니 백분율로 표시하기 아주 용이하다. 그중 나만이 다른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 나머지는 모두 배우자의 직업이 동일하다. 그게 뭐 그리 특별한 일일까 싶지만, 특별한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수와 다른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우려를 표명하는 일을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잘하는데, 나 역시도 결혼 전 많은 조언 아닌 조언을 들었다. '교사는 교사를 만나야 한다.' , '왜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가려고 하냐.', '선배들을 봐라. 다 이유가 있다.', '여자(요즘엔 남자도!)가 애 낳고 키우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직업은 교사(공무원) 밖에 없다.' 등등


처음엔 나도 수긍했다. 하지만 순응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놓고 반골은 아니다. 다만, '은반'이다. 은근히 반골이다.)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되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신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당시에 이런 말을 내게 제일 많이 했던 선배는 집에 제일 안 들어가던 선배였다는 건 비밀 아닌 비밀이다.


부부는 '성별이 다른 베스트 프랜드'라고 했다.


나에게 결혼이라는, 그리고 배우자라는 생각이 처음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일 것이다. 당시 영어 선생님은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었는데, 가끔 본인 처자식 자랑을 하셨다. 여행 다녀온 사진도 보여주시면서. 그런데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표정이 그 누구보다도 밝았다. 자랑할만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문제적 드라마, KBS < 사랑과 전쟁>까지는 안 가더라도 나는 그렇게 행복한 부부의 모습은 한국에서 못 본 것 같았다.(그렇다고 나의 부모님 사이가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했다.) 선생님은 부부는 '성별이 다른 베스트 프랜드'라고 했다. 처음엔 뜨악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나의 베스트 프랜드는 성별 구별 없이, 아내이다. 아내는 나보다 연상이다. 친구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구의 소개로 만나지도 않았다. 나와 아내는 중고거래에서 사이트에서 만났다.(중고거래라고 하니 뭔가 어감이 이상하지만 실제로 사고 판 것은 없었다. 단지 그 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나는 부산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오면 할 것을 찾다가 경복궁 야간개장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선착순 예약에 실패해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 당시 유행하단 중고나라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검색해 보니 1000원짜리 티켓 한 장에 몇 천 원부터 많게는 만원까지 웃돈을 얹어서 사고파는 광경을 목격했다.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멋진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에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고 한 게시글을 발견했다. '경복궁 야간개장 티켓 양도'. 금액이 쓰여있지 않았다. 무심코 눌러본 게시글에는 조금은 의아한 내용이 쓰여있었다. 사정이 생겨서 갈 수 없게 됐는데 팔기에는 그렇고 원래 예매사이트에서 취소를 한 후 바로 예매하게 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이상했다. 먼저 돈을 안 받고 자신의 권리르 포기하는 게 이상했고, 그다음엔 그냥 조금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취소할 거면 사이트에서 취소하면 되지 왜 굳이 여기까지 들어와서 글을 올린담. 하면서 나도 모르게 쪽지를 보내고 있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 티켓을 무사히 양도받고 문자메시지로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친구와 함께 갈 야간 개장일만을 기다렸다.

3.PNG 경복궁 야간개장 초기에는 경쟁이 엄청 치열했다!


야간 개장일 당일, 전날까지 연락이 잘 되지 않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가기 힘들게 됐다고 미안하다고. 나는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또다시 그 티켓을 중고사이트에 올려 팔거나 양도하기는 싫었다.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티켓 양도자(현 와이프, 구 여자 친구)에게 연락했다.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원래 같이 보러 가기로 하던 사람이 안 와서 저 혼자 가게 됐네요. 잠시 후 답이 왔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나가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약속은 없다고 했다. 그냥 뭔가 낯선 사람이랑 경복궁을 그것도 야간개장을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서 핑계를 댔었단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혼자 우두커니 경복궁 매표소 앞에 서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렇다고 그 표를 모르는 사람 붙잡고 손에 쥐어줄 수도 없는 일. 그냥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녀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생각과 가치관이 바른 사람이었다. 2주 후 우리는 처음 만났고, 2년 후 결혼했다. 아내는 나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일단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나는 평생을 짜인 계획 속에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짜인 학원 스케줄에 따라 살아왔고, 그 생활은 대학교를 가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대학교 때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교대는 학교가 수업을 다 짜준다. 고등학교로 가 불리는 이유가 있다. 결국, 스무 살이 넘어서도 누가 정해준 일정에 맞춰 생활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초등학교 때 잠깐 주산(여기서 나보다 연상임이 드러난다!) 학원을 다닌 것 빼고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험 네 번 보면 다 지나가버리는 일 년 일 년이 나에게는 학교생활이었다면, 그녀에게 학교 생활은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다양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없이 친구들이랑만 가는 캠핑이 무서워서 가입하지 않았던 스카우트를 그녀는 고등학교까지 6년을 넘게 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그녀는 나랑은 전혀 다른 사람임이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더 큰 차이는 이러한 학창 시절과 성장배경으로부터 나왔다.


나의 별명은 '집돌이'였다. 안락지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불 밖은 위험해를 어릴 적부터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부모님 말씀을 실천하며 안전지대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이다. 반면 그녀의 별명은 '재간둥이'였다. 아내는 어디든 가서 살 수 있을 정도로 안락지대와 안전지대가 넓었다. 여행을 가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낯선 곳에서도 곧바로 적응하고 오히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 같은 아우라를 풍길 때도 있다.(그런 곳에서 언제나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나도 한 때 공부족을 꿈꿨다. 꿈꿨다라기 보다는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당연하지 않을 길을 걷게 되었고, 관광이 여행이 되는 순간처럼, 낯선 골목길 어귀에서 이름 모를 들꽃과 어딘지 모르게 미소가 순한 강아지를 본다. 맞다. 나도 가끔 내 친구들이,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이 얻는 사회경제적 이점들(예를 들면 연금이라든지)을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나는 아내를 만나고, 함께 살며 하루하루 깨닫고 있다. 삶은 관광이 아니란 것을, 남들이 정해 놓은 관광지를 패키지 여행객들과 함께 훑고 오는 여행은 여행이 아님을 말이다.


KBS 아나운서였다가 홀연히 스페인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손미나는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꽃길은 흙길이다. 흙 없이 피는 꽃은 조화이다.'


1.jpg 꽃은 흙에서 핀다.

신발이 더러워질까 삶에 내딛지 못하는 향기로운 꽃은 없다.


저는 '공부족'은 아닙니다만,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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