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MBTI와 구별 짓기에 열광하는 이유
아내와 결혼하기 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고, 빠른 시일 내 인사시켜드리겠다고. 그랬더니 대뜸 엄마가 입을 떼었다.
혈액형이 뭐래?
뜨악했다. 먼저 내가 이제껏 결혼할 사람의 혈액형도 몰랐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21세기에 아직도 사람을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에 또 한 번 놀랐다. 요즘 혈액형이 뭐가 중요해하며 얼버무렸더니, 엄마도 우리 땐 혈액형별 궁합도 꼭 봤어. 그래서 내가 너네 아빠랑 결혼한 거야.로 얼버무렸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언제나 O형끼리 만나면 잘 산다고 예전부터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 같아 재빨리 방문을 닫고 나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무리 예전에 그랬어도 그렇지... 혈액형 따위로 어떻게 복잡다단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지!
며칠 뒤 옆반 선생님들과 담소를 나눴다. 언제나 그렇듯 주제는 아이들 이야기다. 오늘 창체 시간에 MBTI 검사해봤는데 신기하더라고. 김 선생님도 해봐요. 이게 생각보다 아주 딱딱 잘 맞추는 거 있지. 그래요? 나도 내일 애들이랑 같이 해봐야겠다. 이 선생님, 저도 그거 자료 좀 보내주세요! 그래요. 내가 바로 우리 학년 모두 쏴 드릴게요! 교실에 돌아오니 메신저 알림 창이 번쩍이고 있었다. 약식 MBTI 검사지와 해석지였다. 그래. 행정업무 때문에 내일 수업 준비하기도 벅찬데 한 시간은 이걸로 때워야겠다. 그래도 내가 먼저 한 번은 해봐야겠지?
아아, MBTI신이시여!
또 뜨악했다. 생각 외로 정말 잘 들어맞았다. 나는 나름 신앙을 가진 신앙인임을 자부하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어떤 '믿음'이란 게 생겼다. MBTI신이시여! 를 외치며 다음날 아이들에게도 MBTI 이름표를 하나씩 만들어줬다. 너는 ISTJ, 너는 ENTP, 또는 뭐뭐. 아이들도 자기와 동일한 혹은 유사한 친구들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석지에 나와있는 자신의 유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흡족했다. 나 역시도 어제 읽었던 해석지를 보면서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맞아. 이래서 그랬어. 역시 난 이래. 그래 난 이런 사람이야.
남과 여로도 충분했던 구분이. ABO 혈액형, MBTI, 그리고 요새는 MBTI의 심화된 버전까지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그만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라 봐도 괜찮을 걸까.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남자라서 이래, 여자라서 저래. 같은 말은 통용되지 않으니 말이다.(적어도 젠더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예전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던 정운찬 교수의 주장을 펴낸 책 <나는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다>를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시대적 맥락 상 서울대 총장으로서 어떤 인재상을 선발할지에 대한 그의 의견을 담은 책이다. 그러한 맥락과 무관하게 나는 그저 '비빔밥'이 지닌 어떤 속성을 옹호한다. 나는 밥이라고 해서 채소들을 무시할 수 있는가? 내가 가장 붉은 고추장이라고 해서 누런 계란지단을 괄시할 수 있을까? 없다. 비빔밥은 모든 재료들이 하나로 비벼질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있다. 밥에서부터 마지막에 올라가는 깨소금까지. 그 어떤 것 하나 의미가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이다.이는 초등학생들도 아는 '아씨방일곱동무'(우리가 중등학교 때 배운 '규중칠우쟁론기'의 우리말 버젼)의 교훈이기도 하다!
편의성이 교실을 병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A형이 반드시 B형에 비해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ENFJ가 ISTJ에 비해 반드시 사회성이 높은 사람일까? 우리는, 정확히 우리의 뇌는 단순한 것을 사랑한다. 복잡한 것을 유형화하여 인지하는 것은 정보처리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인다. 안경 쓴 사람은 대개 독서를 즐기고, 남자는 대개 여자보다 힘이 세며, A형은 소극적이니까 놀리면 쉽게 토라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안경 쓴 A형 남자 중에 독서 대신 서핑을 잘하는 팔다리가 얇은 외향적인 서퍼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분류로 많은 것을 놓쳐왔다. 왜? 그냥! 정확히는, 그냥! 편리하니까! 그리고 이런 편의성이 교실을 병들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들은 바쁘다. 수업 준비, 신학기 준비로도 바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새롭게 맞이한 아이들의 이전 담임선생님들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 이 아이는 어떤 아인지, 힘들게 하는 아이는 아닌지, 민원을 넣는 부모가 있는지 등등. 특히 별을 달고 온 아이들을 맡게 된 담임은 더욱 발바닥에 불이 난다. 여기서 별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요주의의 표식이다. 그렇다. 학기초 아이들은 이름보다, 성별보다, 개별 학생의 됨됨이보다, 비고란에 쓰인 표식에 의해 구별 지어진다. 표식이 있는 아이는 요주의 학생이 되어 3월 한 달 간은 철저하게 선생님의 애정(?)을 받게 된다.
이런 낙인 아닌 낙인찍기는 전형적으로 학생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았을 때 만들어진 관행이다. 사실 20세기 근대교육에 있어 이러한 관행은 불가피하기도 했다. 한 번에 6,70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사실상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교사에게 이는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이런 고육지책 중 하나를 그린 소설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있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교육은 많은 면이 달라졌다. 교사당 학생수도 21명 수준으로 줄었으며, 다른 질적인 변화 또한 많이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유형들 안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짓는다.
표식을 붙이고 온 학생들은 티가 난다. 어쩌면 자기 가슴팍에 붙어있는 별들을 스스로도 아는 것처럼, 튀는 행동이나 예의 없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지.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구먼. 어딜 감히! 표식은 혹은 구별 짓기는 그 사람을 그 표식에 가둔다.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학습부진'은 '학습부진'으로 이어질 뿐이고, A형은 소심할 뿐이고, ISTJ는 꽉 막힌 사람이다. 우리는 이 말들 안에, 이 유형들 안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짓는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구별 짓기가 진정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될까? 함께 살아가는데 어떤 유익을 줄까? 눈에 띄는 유익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상대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나 빼고 모두 O형인 우리 가족은 홀로 A형인 나를 맨날 구박했다. 소심하긴, 좀 대범하게 해 봐. 그래서 내가 아내의 혈액형이 O형이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잘난 O형들께서 그들의 사회성과 너그러움을 내세우며 나를 놀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러면 난 또 그게 듣기 싫어 자리를 떠난다. 그러면 난 또 삐쳐서 나가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지난 명절 때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혈액형별 성격에 대해 또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역시 O형들이 성격이 좋아. 피도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잘 주고 말이야. 하하하. 우리 마음씨 넓은 새아기가 쟤(나) 좀 잘 보살펴줘. 또 삐질라. 하하하. 잘난 O형 연합전선에 A는 포위돼 아무런 힘도 못 쓰고 돌아왔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하려는데 아내가 귀찮은 듯 한마디 던졌다. 자기야 근데 나 O형 아닌데? 자기가 나 O형이라고 했어? 나 B형이잖아? 기억 안 나? 우리 헌혈하러 갔을 때?!! A형 세심하다고 해서 좋아했는데……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