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가이드북' 으로서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
숲 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에세이를 읽고 있다. 독후감이란 본디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쓰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더 이상 나의 감상을 주체하지 못해 쓴다.
이 책은 요즘 우후죽순 출간되고 있는 자사 전식 에세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물론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되, 작가는 그만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철학이라고 말해서 거창해 보인다면, 독특한 관점이라고 바꿔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산다. 작가는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작가가 다른 작가와 차별적인 지점은 사유의 깊이에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뒤틀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사각지대를 비춰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번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가능한 현실이기는 하되, 기대하지는 말아야 할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숲 속의 자본주의자 중에서)
누구나 자신의 열정과 소명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통념을 깨부순다. 여기서 말하는 복권 당첨은 물론 1등 이리라. 무려 천둥번개를 연속으로 두 번 맞을 확률이다. 가능은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저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바로 이런 일이라고 한다.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꿈꾼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삶도 즐길 수 있길. 하지만 그것은 매주 복권을 사서 1등 당첨이 되길 바라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충분히 영글지 않아 조금이나마 기대했었던 소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저자의 이력은 특이하다. 삶의 자취가 여기저기 찍혀있는데,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흩어져있다. 영문학과 졸업, 신문사 기자 생활, 미국 박사학위 취득. 그다음이 이 책이다. 숲 속의 자본주이자(알고 보니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다른 책도 출간한 경험이 있었다!)
무수하게 흩어진 별들을 별자리로 엮어보려면 일단 어떤 모양이라도 나와야 갖다 붙이는데 이 점들은 차마 붙일 타이틀이 생각나지 않는다. 전직 기자?라고 하기엔 경력이 짧고, 그 스스로 자신을 기자로서의 정체 서울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러면 교육학 박사?라고 하기에도 어색하다. 그는 이미 학계를 떠났고, 교수가 되려는 작은 미련도 없어 보인다. 작가가 그나마 어울리는 타이틀일 듯한데, 책 어디에서도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전직 기자, 박사학위 소자자, 작가이기 전에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생활인인 저자는 열혈팬이기도 하는데, 그 대상은 BTS처럼 잘 나가는 아이돌은 아니다. 그녀가 가이드로 삼고 있는 책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00년 가까이 된 자연주의적 삶은 산 또 다른 생활인이다. 이 책 곳곳에서 <월든>의 인용이 출몰한다. 여기까지만 나왔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자사 전적 에세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용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탐사한다. 해석한다. 발굴한다.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저자는 묻히기 쉬운 오래된 고전의 말뜻을 현재화한다.(나는 월든을 사놓고, 5년에 걸쳐 네 번 읽으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완독 해내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 활자라면 가리지 않는 나였지만,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고, 조용한 자연에서 홀로 지내는 200년 전 외국 남자 이야기가 썩 재밌게 읽히진 않았다.)
저자와 나를 비교해보니, 내가 <월든>을 읽고도 자주 포기했던 이유를 알겠다. 나는 한 번도 자연에서 살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서울 촌놈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대도시 서울을 떠난 적이 없고, 일가친척이 모두 서울에 살아 그 흔한 귀경 귀성길에 합류해 보지 않았다. 기껏 접하는 자연은 집 주변의 공원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자주 가지 못했다. 나는 자연을 몰랐고,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 무지했다. 하지만 저자는 뼛속까지 도시인이면서, 자연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냥 자연인이 아니다. 하이브리드 자연인이다.
그녀는 자본주의가 자연에 발 딛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최적의 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매개로 상대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만약 하나부터 열까지, 내 삶에 관여하는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면 그에게 여가시간이란 없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내 돈이니까, 청구서를 모두 지불하고 나면 내 의무를 다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게 돈이 있고, 그 위력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정작 나 자신은 초라하고 불완전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하고, 살아있는 것만으로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 중에서)
아직 남은 페이지가 있다. 책을 마무리할 때 즈음이며, 그녀가 소로를 롤 모델로 삼았듯, 나 역시 그녀를 롤 모델로 삼아 조금 더 성숙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