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성장 없는 교사들

왜 학교는 성장의 공간이 되지 못하는가

by just in

어느 학교나 그러하듯, 학교는 대개 교육공간이기보단 행정기관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한 학교의 장인 교장은 교실을 떠난 지 오래된 교사 출신 행정가이며, 교장이 되기 위해 교감 시절부터 수업보다는 행정에 초점을 두고 학교에 머무른다. 권위적인 한국 공무원사회 특성상 기관장의 특성이 곧 그 기관의 특성이 되는데, 이 같은 측면에서 학교는 행정기관의 성격이 짙다.


교육행정이라는 말은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행정편의적 용어다.


교육행정이 교육에 관한 행정을 뜻하는 것이니, 어느 정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두 단어의 조합은 영 어색하다. 마치 교사 교장처럼 말이다.


가장 훌륭한 교사는 가장 끝까지 배우는 교사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그들이 머무는 일터인 학교도 '배움의 공간'이 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을 위한 교육공간이지, 교사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공간은 못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예산지원, 컨설팅 장학, 그리고 유명강사의 초청까지... 성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서목록을 받아 책을 사주고, 교사학습공동체의 폭넓은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일찍 학교 밖으로 내보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성장이 없다고?


김태현 선생님의 교사의 시선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학교 밖 공동체 모임들을 보면,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많은 헌신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왜 모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교사가 학교 안에서 성장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협력과 소통의 문화가 없다. 서로 토의하지 않는다. 물어보지 않는다. 원칙을 세우고 그냥 하달한다. 이상하다. 교육의 본질은 마음과 생각의 연결인데, 교육 기관을 자처하는 행정 기관들끼리 이런 연결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불통의 상태에서 다들 무엇인가 열심히는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끊임없이 예산을 만들고 계획안을 하달한다. 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는 온갖 정책과 문서는 왜곡되어 실천된다. 교사는 정책의 기계적인 이행자가 되어 실천하는 흉내만을 보여준다. (중략) 나도 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뭔가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고 싶은데, 왜 나는 이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는 것일까? (중략) 이것은 비단 한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기관 전체에 흐르는 문화의 문제다. 서로 소통하고 교육의 본질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문서 행정으로 비본질적인 것에 몰두하고 있으니, 교사들은 쉽사리 학교 안에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교육행정에서 행정은 주로 문서로 이루어진다. 문서에는 마음이 없다.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있는 것은 지시사항이거나 요구사항이다. 마음(동기)이 없는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긴 힘들다. 구중궁궐 교장실에서, 파티션 맨 안쪽 교감실에서 마우스 클릭으로, 전화 한 통으로 이루어 내기에 교육은 너무나 복합적이다. 모여서 생각을 나누고 우리 학교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어렵다. 교장선생님 탓만이 아니다. 학교에 머무는 어떤 연령대의 교사들도 이러한 문화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우리가 배운 것은 상명하복이다.


누구한테 모범을 보이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박노해의 시인이 이야기하듯,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나부터, 희망의 등불을 켜 비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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