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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Jul 01. 2015

서문

첫번째 글은 쓰다

완전한 타인에게 글을 노출시킨다는 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새로 만든 블로그 주소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지웠다가 하는 찌질함은 물론이요, 나를 알고있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며 말만 번지르르하군, 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걱정까지. 그렇다고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쓴 글은 없다. 혼잣말이 하고 싶은 날엔 그걸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누군가가 떠올랐을 때 써야 마땅하다. 이 글의 독자는 당신이겠지. 안녕? 나는 글에 적당한 중량감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마음에 담았을 때 기분 좋은 정도의 무게를 가진 글을 쓰고 싶다. 뛰어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어느 날엔 아주 훌륭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엔 나조차 깜짝 놀랄만큼 비루한 상념을 떨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니 내 글을 가엽게 여기는 눈길로 읽어주길 부탁 드립니다.


첫번째 글은 글에 대해 써야한다.


이미지로 가득 차,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 매우 발달된 시대에 나는 태어났다. 이런 세상에 살다보니 아주 작은 메세지도 그림이나 영상으로 된 것을 접하고 있고, 그 편리성과 효과에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게다가 그것들은 아주 합리적인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대를 이십 오년을 살다보니 글의 아주 독특한 점을 발견했다. 글에는 생명력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사람처럼. 글에는 지우기 힘든 사람의 흔적이 있어 작가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점. 화려한 색감으로 현혹할수도, 빵빵한 기술로 눈을 가릴 수도 없는, 자칫하면 외면하고 싶을 정도의 초라한 면면을 보게 한다는 점. 그걸 알기 때문에, 나는 오른쪽 위의 '발행'버튼을 누르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아름다운 민낯을 보여준 글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그 소설은 오차범위가 매우 작은 감정이 담겨있다. 민망할만큼 솔직해서, 순수하다는 말이 적당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한 문장이 열 줄이나 되어 아직 전권을 다 읽지 못했지만, 그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책장을 덮고 고조된 내 감정을 가라앉혀야할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글이다. 이처럼, 시간이 흘러도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글의 생명력은 일부러 죽이려고 해도 죽지 않고, 폄하하려고 해도 설득력을 얻기가 힘들다.


언젠가 지하철 2호선에서 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마주친다해도, 그를 피해 다른 칸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만 뻔뻔해지고 싶다. 글을 자주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의 조건'이라는 제목의 매거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의 삶이 순조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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