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중딩 때 책가방엔 만화책만 들어있었고 그 중엔 알바언니한테 양해(?)를 구하고 빌린 19금 순정만화도 있었다. 그 땐 정상적인(?) 지식도 별로 없어서 아무 의미도 몰랐는데 뭐가 재밌었던걸까..
삼사개월 전에, 새벽에 깨서 웹툰을 보다가 볼 게 떨어져서 웹소설이란 걸 봤다. 보니까 내가 저맘 때 모니터 앞에 앉아 엉엉 울면서 마우스 스크롤 내리며 읽은 인터넷 소설이랑 비슷한 거였다. 보다가 보다가 거의 두시간을 보고 난 다음에도 더 보고싶어서 어떤 웹소설을 읽었는데, 결국 스물 여섯이 되어서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엉엉 울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종종 웹소설을 여성용 포르노 같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여자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완벽한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희생하고 결국엔 여자주인공과 행복해지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실제 야동은 아니지만 어쨌던 남자들에게 성적인 판타지를 자극시켜주는 에로영화와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야한 영화를 보듯 나는 이불 속에서 가장 슬픈 회차의 웹소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가슴 아파하고, 회복되는 회차를 읽으며 설레고 안도하는 거였다. 그게 어떤 면에선 한심하면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나도 안다. 내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성숙하거나 능숙하지 않다는 거.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난 얄팍한 러브스토리에 마음이 안 아플 순 없을 거다. 그리고 실은 전혀 얄팍하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글을 쓰던 사람으로서 자존심을 내세우면 할 말은 많겠지만, 이야기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경험과 함께 하니까 괜찮다. 나는 그 밤에 읽은 소설도 재밌었지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던 기분이 좋았다. 허구의 두 인물이라도 그들이 서로를 애달파하는 걸 보며 내 마음이 다 찢어지는 것처럼 엉엉 울 수 있다는 게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얻은 슬픔과 눈물이 값싼 유머로 얻는 웃음보다 훨씬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짜로 슬퍼질 순 있어도 공짜로 행복해질 순 없는 거다. 슬픈 일이다. 이건 공짜로 슬픈 게 아니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