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가장 잘 한 일

4화

by Lia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다. 바닥에 고인 짤박한 빗물이 너무 맑고 시원해 계곡에 놀러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으니 물장구를 쳐봤다. 정말 오랜만에 비가 반가웠다. 며칠 전, 그러니까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어쩌다 얻은 문화상품권으로 유료만화를 봤다. 컵라면까지 먹으면서 혼자 있을 때 누리는 가장 사치스러운 행복을 누리면서. 다 본 후엔 약간 멍-해져서, 작가 블로그에 들어갔다. 작가의 일기가 재밌었다.


브런치에만 썼다 하면 글을 못쓰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여기 올리는 글이 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다른 곳에 쓰는 글은 좀 나은 것 같음). 아무래도 첫 페이지부터 나를 '작가'라고 치켜세워주고, 글 편집하는 하얀 화면이 한글 새 문서 창처럼 막막하고, 잘 쓰고 싶다는 압박감 때문일 것이다. 이 모든 부담감을 모두 이겨내고, 반복해서 실패작을 써야만 언젠가 글을 잘 쓰게 되겠지. 이런 위로를 스스로 하면서 쓴다.


애니웨이, 작가님이 일기를 쓰다가 왠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꼽게 되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뭘까 생각해봤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길이 좋을까 고민할 일이 많은데, 나는 그럴 때 아주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매우 짧게 내다보고. 모든 판단이 다 옳을 수는 없기 때문에, 몇 번의 실패 쯤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그저 부딪히는 짓만 하기엔 너무 아프다는 걸 이제 알았어 너무 늦었나 봐! 나이가 들수록 선택이 느려지는 건 아무래도 겁이 많아져서겠지.


과거에 대해 '가장 잘 한 일'을 꼽을 순 있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가장 잘 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선택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가장 잘 하'려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건 마치 해보지도 않은 일을 처음 하면서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랑 비슷하다. 인생은 매번 새롭고, 매번 우리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내 선택이 가져올 폭풍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내가 이 일을 하려고 했으니 그에 걸맞은 노력은 기꺼이 할 수 있어. 그러면 나쁜 선택도 언젠가 좋은 선택으로 바뀌어있을 테지. 가장 잘 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할 수는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함.





점점.


매거진의 이전글데이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