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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Aug 13. 2018

눈을 감으면

79화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삼일에 걸쳐 글쓰기를 실패했다. 실패했다는 건 시도했다는 뜻이다. 완성하지 못하고 그냥 처박아두고 잤다. 오늘은 더 편하게 쓸 거다.


고양이와 살면 고양이털이 온 데 묻는다. 다른 건 괜찮지만 나는 얼굴에 붙은 고양이털은 다 떼어내야만 해서, 세수 하고 나면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대신 휴지로 약간 물기를 제거하고 마르기를 기다린다. 토너를 바를 때도 손에 고양이털이 없는지 우심히 살펴보고 재빨리 발라야 한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여도 선크림을 바를 때쯤엔 고양이털이 얼굴이 붙어 있다. 찰싹. 그럼 난 거울을 코 앞 5센티미터 가까이까지 두고서 한 가닥 혹은 두 가닥의 고양이털을 찾는다. 찾아야만 거울 앞을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더워서 그렇게 긴장을 하고 거울 앞에 있는 일이 덥기 때문에 그냥 거실로 나와 눈을 감고 간지러운 부위를 손으로 약간 잡아 뗀다. 그런데 신기한 건, 거울로는 한참동안 찾아도 보이지 않고 간지럽기만 한 고양이털이 눈을 감고 떼어내면 거의 한번만에 다 떼어내진다는 사실이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것도 있는 거다. 기억같은 게 그렇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얼굴.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 풍경. 물리적으로 정말 지그시 눈을 감으면 보이는, 잘은 모르지만 아름다운 것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눈을 감고 나를 봐야 내가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내가 보이지 않을 때 나를 더 잘 알게 된다는 거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를 만나지 않을 때 누군가가 날 생각하기는 할까? 그게 문제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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