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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Aug 26. 2018

서울

80화

제주도에서 돌아온 주말. 한 번은 차로 공항에서 집까지 드라이브를 했고, 또 한 번은 지하철과 버스를 탔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탈 땐 언제나 기분이 별로인데, 단순히 휴가가 끝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울에서의 삶이 언제나 부담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 희안하게도 서울에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옆 자리에 짐을 던져 싣고 시동을 걸어 천천히 공항을 한 바퀴 돌아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면 서울의 하늘도 꽤 아름답다는 걸 발견한다. 창문을 열어 시끄러운 차 소리, 사람들 걸어다니는 소리, 음악 소리... 그런 소리들도 마치 자장가처럼 금방 익숙해지고, 매연과 답답한 도시의 바람도 어쩐지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서울.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인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그렇다. 요즘엔 늘 멀리 갈 땐 차로 다니다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어, 캐리어를 끌고 계단이며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게 제주도에 있을 때보다 더 여행하는 기분? 그렇게 걷는 게 어색하다가도 습관에 이끌려 가다보면 집 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면 아직도 예전의 그 버스가 집까지 갈까, 같은 경로로 같은 번호의 버스가 있는 건가 싶어진다. 아직도 옛날에 타던 그 버스를 타면 홍대입구로 가는 걸까. 경희궁을 지날까.


버겁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 자신이 감당할 무게 너머의 짐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 헛것이 아닌데, 서울에만 도착하면 그 모든 불안함들이 자신감이 되고 그리움이 되어버리는 신기한 현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무섭도록 크고 복잡한 도시지만 어떻게 보면 나에게 뉴욕은 서울인 것이다.


높은 빌딩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한 조각. 어두워질 일이 없는 밤하늘. 조용하다가도 이따금 굉음처럼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도시의 불빛으로 화려한 한강변의 시원한 바람. 그런 게 다, 어쩌면 나에게 그리움이 될 아름다움이겠지.


점점.



추신. 지난 주에 여행으로 놓친 점점 한 편을 오늘 밤에 하나 더 올립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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