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담요

6화

by Lia

삼양검은모래 해변 앞 카페. 파도소리 무색하게 횟집도, 호텔도 드문 곳이다. 멀리 오징어배 불빛 켜지는 해질녘. 나는 달콤쌉싸름한 커피를 마셨다. 제주도. 내가 태어난 곳이다. 열살 이후론 서울에만 살았고, 서울 집이 내 집이라고 느낀다. 그래도 제주도에 오면 늘 제주도구나, 내 고향, 이라고 말을 덧붙인다.


아부지가 제주도로 승진발령을 받아 엄마와 펜언니는 제주도로 이사를 온다. 펜언니는 그 때나 지금이나 심심한 걸 참지 못하는데 내가 아직 태어나기 전엔 심심하다고 자는 엄마를 깨울 정도였다. 언니가 하도 심심하다고 해서 내가 태어났다는 시시한 탄생설화가 있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안낳으려고 했는데 당신께서 낳으라고 했다며 나에게 생색도 내셨다. 어쨌든 태어나길 잘했다.


드물게 제주도에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다. 일월 육일. 새해가 되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예정일 보름을 남기고 세상에 나왔다. 내 사주가 불인데 눈 오는 겨울날 태어나서 환영을 받는 사주라고 한다. 따뜻함이 귀한 겨울이라고. 나는 겨울도 눈 오는 것도 싫어하는데 올해부턴 좋아해보려고 맘을 바꿨다.


카페에서 담요를 두 개나 빌려 어깨에 하나 두르고 무릎에 하나 덮고, 머그잔 두 손에 꼭 쥐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나의 모습이 계절에 꼭 맞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추워도 야외 테라스 문이 활짝 열려 있었으니. 그렇게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모든 계절을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모든 계절을 사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봄엔 봄을 살고 가을엔 가을을 살고. 좋아하는 한 계절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우면서.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겨울에도 빨간 동백꽃이 되어볼 수도 있겠지, 하고.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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