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비가 오는 날엔

11화

by Lia

예전에 수학을 가르쳐주던 학교 선생님은 산을 아주 좋아했다. 같이 등산을 가자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5교시 수업이면 일찍 수업을 끝내고 10분 정도 낮잠을 자게 해 주었다. 방학 땐 언제나 스페인 같은 열정적인 곳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분을 좋아해서 수학은 못하지만 수학일기는 최대한 길게 썼다. 그러면 노트검사를 할 때 코멘트를 잘 달아주었다.


그 분이 좋아하는 것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비다. 나는 그 전까지 날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성격이었고 날씨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 오는 날엔 칠판 쪽 창을 활짝 열고 비냄새를 맡고 빗소리를 듣는 그 분을 보면서, 비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분을 위해 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비가 오면 창문 밖에 흐르는 빗물을 상상했다. 기분이 좋았다. 비 오면 나는 냄새도 좋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는 비가 오는 날마다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비오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정처없이 걸었다. 한번은 진심으로 그가 무얼 하는지 궁금해서 그의 집 근처에 갔는데, 나즈막한 아파트들이 주욱 늘어선 단지 울타리 밖에서 그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봤다. 나는 내 남자친구가 몹시 불행해보였다. 비가 오는 게 너무 싫었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엔 무서웠다.


어느 날은 새벽 빗소리에 깨어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아침까지 답이 없었다. 점심 때 쯤 그는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왔다고,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그를 찾으러 갈까 하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어차피 비는 영원히 오지 않으니까. 그 마음의 비는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으로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 밖을 봤다.


비는 비일 뿐이었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