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소개

21화

by Lia

벌써 두 달이나 내 일상을 오래 연재했건만, 아직 내 소개가 없는 듯 하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일인지 알지만, 그래도 내 소개를 하면 앞으로 더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은 그림은 내가 그렸다. 저렇게 비슷하게 생겼다. 쌍꺼풀이 없고 머리카락은 곱슬에 길다. 앞머리는 종종 있고 종종 없다. 말랐고 특히 팔뚝이 얇다. 다리는 그냥 보통이다. 원피스는 매우 편하고 실용적인 옷이다. 본의 아니게 꽃무늬 패턴을 많이 입긴 하지만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꽃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식물은 잘 키우지 못할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은 여백이 많은 것들이다. 뭐든지간에 여백이 많은 걸 좋아한다. 여백은 정말로 중요하다. 사람도 여백이 있는 사람이 좋다. 이석원의 책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 세계가 확고하고 꽉 찬 사람 앞에선 숨이 막힌다. 그런 사람을 처음 본 게 자퇴하려고 상담실에서 마주했던 고등학교 교장이었다. 권위를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어디서부터 반박해야할지 몰라서 엉엉 울어버렸다. 친구의 여백은 곧 나를 위해 남겨진 공간 같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가보다. 음악이든 영화든 문학이든, 여백이 있는 것들은 다 좋다. 이게 좀 애매한 기준인 것 같지만 나에겐 아주 정확하다. 내가 느끼기에 여백이 없을만큼 꽉찬 것은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너무 잘 짠 이야기나 반주가 꽉 찬 듯한 음악은 쉽게 잊혀지고 질린다. 여백이 전혀 없는 것보단 여백이 너무 과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여백은 일부러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서다. 그러니까 내 취향이란 곧 여백을 말하는 거다.


싫어하는 건 별로 없다. 별로 없으니까 좀 써볼까. 누가바. 열살 때 누가바 먹은 날 척수 뽑는 고통을 겪어서. 급하게 하는 식사. 먹는 속도가 느리다. 체리쥬빌레. 맛없다. 이 정도.


또 나는 아현동의 예대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서점을 오픈준비중이다. 사는 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고 또 어떤 이의 증오와 환멸을 먹기도 한다. 뭐든 골고루 먹어야 하니까. 내 정체성은 다음과 같은 비율이다.


사람임 10%

여자라는 점 5%

한국인 0.5%

부모님의 딸 5%

펜언니의 동생 4%

남자친구의 연인 10%

친구들 사이의 모습 3%

예비서점주인 6%

26살이라는 나이 0.5%

글을 쓴다는 점 5%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 20%

여백 31%


생각보다 여백이적다. 여백을 늘려야겠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