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점

염탐 1

18화

by Lia

열아홉 살 정도였을 때, 그러니까 2009년도에, 나는 누군가의 '옛 애인'이 되고 싶었다. '전여친'이랑은 어감이 매우 다르지만 의미야 같다.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했을 때 이미 누군가의 옛 애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그 관계가 참 미묘하고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옛 애인이 되고 싶다'라는 글을 썼었다.


" 남녀 사이에 언젠가 애인이었던 관계, 지금 애인인 관계, 미래에 애인이 될 수도 있는 관계. 이 세 가지 종류의 관계밖에 있을 수 없다면. 나는 당신에게 옛 애인이고 싶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특히 과거 서로의 버릇이나 생각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당신 성격의 미묘한 변화와 어떤 성장, 새로운 손동작 같은 것들을 잘 알아차리고 싶다. 당신의 모습을 남보다 좀 더 애틋하게 지켜보고 싶다. 당신의 소중했던, 당신이 한 때 정말 마음껏 사랑을 주었던 여자가 되고 싶다. 지금 소중한 그 여자보다는 분명 예의를 지켜야 하는, 그렇지만 과거 어느 시점에서는 무례하게 사랑스러워했던 여자이고 싶다. 어느 장소에 가면, 어떤 물건을 보면, 자연스럽지만 신기하게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다. 완전히 잊은 채 잘 지내고 있지만 가끔씩 간절히 생각나는 주인공이고 싶다. 지금 소중한 그 여자와 어느 부분이 확연히 비교되는 그래서 당신을 아쉽게 하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을 그리워하고 싶다. 이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도 무엇도 아닌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조금 힘이 부친다. "


이런 글이었다. 열아홉에 썼다고 하기엔 너무 까진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이 글을 쓴 후론 옛 애인에 대한 상념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옛 애인이 된 후에 다시 이 글을 꺼내 읽었었다.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옛 애인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구나. 시간이 흐르고, 한 명, 두 명, 내가 누군가의 옛 애인이 되는 동안 나에게도 옛 애인들이 생겼다. 그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잘 기억하고 있다. 또, 연애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감정을 주고받았던 사람들까지 잘 기억하고 있다.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상대방에게만 유효했던 감정이든, 나에게도 오래 지속되었던 감정이든, 그 감정들이 결국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의 바탕이 되니까.


내가 누군가의 옛 애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그냥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더라도 누군가와 사귀었던 사람에 내 이름을 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냥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의 증명 같은 것이다. 나 여기 살았었어, 하고 발자국 꾹꾹 눌러 찍기. 사실 그건 바람이 불거나 위에 새 발자국이 찍히면 사라져버릴, 너무나 연약한 흔적에 불과한데. 뭐, 어릴 때니까.


다음 일기에서 이어집니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