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시절, 나는 혜화동에 살고 있었다. 펜언니 때문에 간 이사였지만 덕분에 혜화동이라는 마음의 고향이 생겼다. 아직도 나는 혜화동에 가면 시골에 온 것처럼 숨을 깊이 들이쉰다. 서울 여느 곳과는 공기가 다른 듯이 느껴지는 대학로 끝자락의 혜화동 로터리.
거기 동양서림이라는 서점이 있다. 꽤 오래 된 서점이다. 거기서 여러 권의 책을 샀다. 샀을 뿐 아니라 자주 들러서 구경했다. 책 제목만 읽고 내용을 상상하는 게 재밌었다. 내 질풍노도의 시기에 동네 서점이 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행운이었다. 동네 서점이 있었기에 내가 너무 멀리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려운 인문학책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의학이나 법학 책까지, 그나마 제목이라도 읽었기에 이 정도다. 그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여기 있는 책들을 다 이해하겠지, 하고 어렴풋한 희망을 가졌다.
그 옆에는 맛밥이라는 김밥집이 생겼었다. 내가 혜화동에 이사가고 얼마 뒤였다. 난생 처음 김밥도 맛있단 걸 느꼈다. 13평 남짓의 작은 분식집에 종업원 아줌마가 여섯명이었다. 얼마나 장사가 잘 되었는지 나는 김밥집 아줌마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사장 아줌마로 보이는 분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계산을 해주면 나는 엄마 뒤에 숨어 꺼억 트림을 했다. 김치치즈철판볶음밥이 내 단골 메뉴였는데, 뜨거워서 처음엔 먹어도 아무 맛이 안 났다. 그래도 맛있으니 맨날 먹었겠지.
그 2층에는 수치과가 있는데, 내가 교정을 받은 곳이다. 중학생 시절 안그래도 고민이 많은데 교정까지 해서 고민이 더 많았다. 많이 먹지도 못하는 밥을 더 느리게 먹게 되었고, 하기 싫은 양치질은 더 하기 싫어졌다. 치과 가면 싫은 소리 들을까봐 걱정이 산더미였지만, 교정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 부담스러워 항상 제 때 꼬박꼬박 다녔다.
로터리를 돌면 우체국이 있었고 길가에 우체통이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서 있는 빨간 우체통. 빨간 우체국.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그 앞에서 서성이면서, 편지를 써 보낼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따라 혜화동 생각이 났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정말 많이 사랑했다. 미래의 나에게 사랑한다고, 무엇을 하고 있든 정말 잘 한 선택일 거라고, 최선을 다했을 테니 고맙다고 하는 편지도 쓴 적이 있다. 그 시절의 내가 자랑스러워할 만큼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이니 다행이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흐른 후, 서른 즈음의 나를 사랑해야겠다.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