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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Jul 07. 2015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를 봤는데.

동상이몽이란 프로그램이 재밌다. 부모의 입장과 아이의 입장은 이토록 다르구나, 싶다.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부끄럽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타인과 나의 입장도 저렇게까지 다를지도 모른다. 대체로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는데,  지난주 동상이몽을 보고는 마음이 아주 안 좋았다.


냉정하게 말해 나는 그 아버지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셨으면 좋겠다. 일부러 하는 악담에도 정도가 있다. 딸이 방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우는데도 자신이 준 상처의 심각성을 모르고, 딸이 밝고 뒤끝 없어서 더 심하게 대해도 상관없다는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다. 물론 딸은 벌써 아동의 나이를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버렸지만.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꿈을 철저하게 짓밟는 어른들이다. 아버지도 포함되어있다. 딸이 공중파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하다 실수를 하는데 옆에서 기분 좋은 듯 웃던 아버지가, 딸에겐 얼마나 차갑게 느껴졌을까. 그녀가 노래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세상이 차가운 시선으로 얼마나 잘하는 지 한번 볼까, 하는 태도를 일관한다 해도, 아버지까지 나서서 네가 노래를 얼마나 못하는 지 똑똑히 알려주마, 하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들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가수가 아니라도 그렇다. 다른 어떤 꿈이라도, "넌 절대로 할 수 없다. 기초가 전혀 안 되어있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못하는 편이다. 너한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백 프로 사기꾼이다."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자기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심사할 자격을 가지고 태어난 듯, 올챙이 적 시절은 까마득히 잊고, 꿈을 가진 연약한 존재에게 미래를 꿰뚫어보는 신내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말하는 건 아니다. 나는 너를 평가할 권리와 의무가 당연히 있다. 너를 도와주려고 하는 말이라는 좋은 의도는 마음에만 담아두면 된다. 아무도 그 누구도, 고등학교 일 학년 짜리 상처 많은 아이가 가진 꿈 앞에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어른다운 게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도 엄연한 남이다. 아버지가 딸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 자식의 선택은 바보 같은 선택일지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다. 부모의 강요로 한 선택은 아무리 옳은 선택이었더라도 자식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내가 잘해서 된 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 부모님이 잘 도와주셔서 된 건지, 인생은 더 미로 속에 빠져들게 된다. 차라리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 한 선택에서만이 인생을 알아갈 수 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 내 주위에 있던 모든 어른들이 말렸다. 심지어 친구들도 말렸다. 그러나 그들 중에 내 질문에 이렇다 할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책을 읽었고, 골백번도 넘게 고민했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답이 나왔다. 그래도 꾹 참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일 학년 말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그만뒀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심지어 선생님들마저. 그제야 알았다. 그들은 내 인생에 쥐뿔도 관심이 없었다는 걸. 자퇴를 하는 것이 꼭 범죄경력을 얻는 짓인 것처럼 말리더니, 이제는 나를 부러워하다니? 씁쓸했다. 외로웠다. 내 인생에 진지하게 관심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내가 그들을 믿고 학교를 졸업했더라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없었을 것이다. 결과가 좋고 나쁨을 떠나, 나는 자퇴를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자퇴한 것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후회 역시 너무나 달콤했고 그 후회 때문에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또 지금에 와서, 이제 십여 년이 지났으니 내린 결론은, 정말  잘했구나,이다.


꼭 해은이와 같은 나이 때, 딱 이맘 때였다. 엄마와 자퇴와 관련해 싸운 뒤 혼자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혼자 왔다고 하니 주인 아저씨가 놀라는 눈치로 서비스를 엄청 많이 주셨다. 상냥한 말투로 물도 주셨다. 내가 외로워 보였 나보다. 그래도 좋았다. 나를 가엾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힘이 생겼다.


세상에는 이런 어른도 있고, 저런 어른도 있는데, 동상이몽 녹화장의 어른들은 무자비하고 잔인할 만큼 차가웠다. 내가 그렇게 느낄 지경이었으니, 당사자에겐 오죽했을까 싶다.


부모와 자식의 연은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도 자식을 고를 수 없고, 자식도 부모를 고를 수 없다. 아버지가 딸을 어떻게 할 수 없듯이, 딸도 아버지를 어떻게 할 수 없다. 가족이란 게 대단한 건 아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면 그게 가장 좋은 가족이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고, 심한 상처를  주고받아도, 결국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러니 아버지를 용서하는 걸 아버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 용서하고, 너 자신을 위해서 아버지를 사랑하면 된다. 꼭 그만큼만,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만큼만 아버지를 사랑해드리면 좋겠다. 어떤 아버지든지 그 아버지의 딸로 살아갈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딸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효도인 것 같다. 하루하루가 무섭고 힘들 거라는 걸 알지만, 내 경험을 말하자면 난 그 때가 가장 힘들었고, 그걸 이겨내자 성인이 된 후의 인생은 견디기가 아주 쉬웠다.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뼈저린 상처를 극복한 사람에겐 식은 죽 먹기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칸트가 십여 년 동안 철학적 침묵기를 거치면서 혼자 글을 쓸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개 이런 말이 사실인 경우는 드물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므로. "나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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