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내가 태어난 이유는 매우 명백한데, 네 살 정도 된 언니가 너무나 심심해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서운한 맘이 없었다. 태어난 이유는 사소하고 간단할수록 좋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내가 대단한 운명을 타고 어떤 훌륭한 일을 하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건 가끔씩 큰 위로가 된다. 어쨌든 나에겐 언니가 하나 있다. 여기서는 펜언니라고 부르고 있는.
펜언니와 나는 매우 다르다. 살아온 인생도 다르고 속한 사회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전래동화 전집이 있었는데, 그 중에 어떤 소년이 아무데나 버린 손톱을 쥐가 갉아먹고 소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서로 누가 진짜 소년인지를 가리는 동화가 있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 크고 난 후에 어느 날 언니는 내가 손톱을 뜯어서 아무데나 버리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자기는 어릴 때 그 동화를 본 후로 손톱은 항상 휴지에 꼭꼭 싸서 버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동화를 본 후로 손톱을 아무데나 버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발 어떤 쥐가 먹고 내 모습으로 나타나주기를 바라면서.
워낙 다르다보니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좋은 점이 많다. 나는 펜언니가 없었더라면 펜언니같은 성격의 친구를 절대 사귀지 않았을 것이고, 그건 펜언니도 마찬가지일 거다. 우리는 학교에서 노는 물 자체가 달랐을테니까. 하지만 펜언니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중학교 때 늘 전교 등수가 매우 높은 아이와 단짝이었다. 단짝은 공부를 안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단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펜언니는 시험기간이 아닌데도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눈엔 정말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내 덕분에 펜언니는 스무살 무렵 일본드라마를 나와 함께 섭렵했고, 노는 것의 재미도 알았을 것 같다.
펜언니는 약간의 피터팬 증후군이 있어서 팬언니라고 하려고 보니 팬보다는 펜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펜언니로 칭하고 있다. 그냥 언니라고 하기엔 심심한 느낌이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는데 얼마 전에 자기가 왜 펜언니냐고 물어서 당황했다. 나는 부모보다 형제나 자매가 더 가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주 가까운 친밀감을 느끼기엔 좀 어려운 존재지만 형제나 자매는 같은 부모 아래서 같이 자라고 서로의 인생을 가장 오래 지켜본 존재니까 말이다. 물론 나는 외동딸이었어도 좋았을 것 같긴하지만...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