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어떤 잡지를 보았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카네기 명문가에서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가치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뒷내용에 그것들 중에 하나가 나오기를 바랐다. 나는 누구보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으니 인정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문장은 이렇게 이어졌다. "순서이다. 먼저 착한 아이가 되라고 한 후에 똑똑한 아이가 되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착한 아이가 똑똑한 아이가 될 수 있지만 똑똑한 아이는 착한 아이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야 비로소, '방법'이라는 게 무엇인가 알았다. 순서는 내가 생각한 범위 밖이었다. 참 좁은 세상이었다. 답답해서 숨을 못 쉴 지경이었으니까. 그 전까지는 '무엇'에 맞춰 있었다.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말하느냐, 무엇을 가르치느냐, 무엇에 관한 문제들. 그러나 그 글을 읽은 후에는 '어떻게'가 문제였다. 어떻게 가르치느냐, 어떻게 말하느냐, 실제로 내가 느끼기에 세상은 '무엇'보다 '어떻게'에 관한 문제들로 뒤덮여있다. 어떤 아이가 되느냐보다, 어떻게하면 그런 아이가 되는가에 관한 문제들.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경영은 더 중요하다. 내가 누군지 설명하려고 애쓴 시간들이 다 아깝다. 그 시간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 돌아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
최근에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책도 보고 에세이도 읽고 하던 차, 오늘은 세기의 대결이라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첫 대국이 있었다. 그냥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바둑은 스포츠니까, 알파고는 이기기 위해서 바둑을 두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바둑이 좋아서 둔다. 이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다.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면 뭘까. 어쩌면 그게 진정한 승부인 건 아닐까. 승리를 하느냐보다도 어떻게 게임을 하느냐에 관한 방법론적인 문제.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