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판때기들의 특징-음악. 스타트업.영화.게임

DIARY

by 정이안

음악판: 순진하게도 실력만 있으면 뜬다고 믿는다.

그리고 차트의 음악들이 실력 순서라고 종사자들조차 믿고 있다.

그렇다고 종사자들이 진짜 순진하냐면 것도 아니다.

누구나 음 하나 찍었다고 작곡가라고 부를 수 있는 필터링이 안된 업계가 어떤 곳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돗대기 시장처럼 온갖 인간 군상이 몰리는 곳이지만, 투자금과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인맥 그리고 운이 있어야 뜬다는 당연한 걸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곳이라는 모순이 있다.

(이건 아마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친구들이 몰려드는 시장이기 때문일지도....?)

어른들이 항상 말해오던 '이런 거 하기 싫으면 열심히 공부해'의 '이런 거'에 해당된다.

박봉에 시달리는 것을 뛰어넘어서 무보수 Pay 가 기본 스탠스인 신기한 시장.

('가격 좀 깎아주세요' 가 아니다!!! '네꺼 써주잖아. 그냥 줘.' 가 기본인 시장이다)

결국은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거면서 무언가 멋진 대의명분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말한다.

'본인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시타비(我是他非) 의 각축장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쉬울 것 같다.

스타트업 벤처: '굳이?' 싶은 부분까지 영어며 줄임말을 쓴다.

예를 들면, 벤처투자사라고 하면 될걸 VC 라느니,

10억 규모의 투자라고 하면 될걸 '시리즈 A' 라느니,

상환 의무 없는 투자라고 하면 될걸 '엔젤인베스트먼트'라느니,

심지어 그냥 '투자'라고 하면 될걸 굳이 인베스트먼트라고 한다.

나에게는 이게 몸집이 작은 양서류나 파충류가 바람을 부풀려 몸집을 크게 만들어서

천적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그런 욕망처럼 보였다.

마치 본인의 꿈과 희망을 위해서 '본인은 취업 안 하고 본인의 꿈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내간다'라는 몽환(夢幻)에 취해서

사실은 매출액 하나 없는 빈 껍데기를 감추고 싶어 하는 강한 모순들이 느껴졌달까?

SNS에는 언제나 아련미 넘치는 사진 혹은 본인만이 그 의미를 아는 사진들을 올리며,

본인은 타인들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는 특수능력을 지닌 것인 양 글을 쓴다.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길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언제나 생각한다.

영화판: 만드는 작품은 비현실성이 많으면서도 업계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다.

협업과 외주가 기본이다 보니, 예술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 명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리고 감독 본인이 연출과 각본을 동시에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굉장히 똘똘한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각본은 대충 문장 몇개 썼다고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외부적으로 보일 학벌이나 커리어는 없을지언정 좋은 의미의 잔머리. 꼼수 대마왕들이 많다.

현장에서 무수히 발생되는 변수에 대한 대처를 해야 되니까 키치 한 아이디어가 많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래도 감독 본인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보니 상대방의 의도와 맥락 파악을 굉장히 잘한다고 느낀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감을 항상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보니 술을 좋아하는가싶다.

게임판: 당연하게도(?) 오타쿠 기질의 사람들이 많다. 오타쿠 성향을 이해 못 하는 사람에게는 힘든 시장일지도?

넘사벽의 능력치를 지닌 괴물들이 많은 시장.

고등학교 시절에 본인 혼자서 게임엔진을 개발한 사람이 25살 나이에 프로그래밍 팀장으로 있다던가....

영국 왕립예술 학교 졸업한 사람이 재미 더럽게 없는 인터페이스 UI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다던가...

행색이 남루해 보이는 기획자였는데 알고 보니 전 직장이 블리자드나 구글 (한국 지사 말고!!! 미국 본사!!) 이였다던가.....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전문직치고는 너무 박봉인 시장이다.

박봉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근로자가 받고 있는 포괄적 임금제는

제조업을 위한 제도로 시작된 것인데,

공장이란 걸 굴릴 때에 어느 달은 감산을 하고 어느 달은 증산을 해야 될 때가 생긴다.

(수요가 없는데 물건을 계속 찍어내봤자 수요공급 법칙으로 가격만 하락할 테니까 말이지.)

증산은 문제가 없다! 그냥 수당을 더 챙겨주면 되니까!!

하지만 감산해야 되는 달에 노동자들의 월급을 줄여서 줄 것인가?!

인간은 원래 받던 것이 없어지면 설령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지언정 불만을 품게 된다.

그래서 유동적인 인적자원 활용을 위하여 제조업을 위해 만든 것이 포괄적 임금제인데

이게 IT 나 게임 업종에게는 독약 같은 임금제 되겠다.

왜냐하면 IT 나 게임은 '감산' 은 없고, '신제품 출시' 와 '업데이트'라는 개념밖에 없으니까!!!

공장의 노동자는 3교대 근무가 기본이니까 본인이 계약한 노동 근로시간만 채우고 퇴근하면 끝나지만

IT 나 게임업계에서의 포괄적 임금제는 24시간 Full로 돌려도 괜찮다는 의미가 된다.

이 포괄적 임금제가 한국 게임업계를 몰락시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싶다.

이상, 지극히 개인적 경험에 의거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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