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볶음탕, 재료마다 익는 시간은 달라

by 서모니카

닭볶음탕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요리다. 일단 내 기준에선 그렇다.
‘닭볶음탕’이라고 하지만 오로지 닭 혼자서 메인인 메뉴가 아니다. 굵직하게 썬 채소가 빠지면 맛이 안 산다. 감자, 당근, 양파, 대파, 고추까지 별의별 재료들이 다 들어간다. 까다로운 요리라고 한 이유는, 이 재료들이 제각각 익는 시간이 다르다는 거다.


감자는 단단하고 치밀해서 푹 끓여야 제대로 익는다. 닭고기랑 거의 동시에 넣어야 한다. 반면 양파는 너무 오래 끓이면 흐물흐물해져서 모양도 맛도 다 사라진다. 대파는 불 끄기 직전에 넣어야 향과 모양이 살아난다.


한 번은 귀찮아서 재료를 한꺼번에 다 넣어봤다. 왜, 그런 날 있잖나. 먹고는 싶은데 요리하긴 귀찮은 날. 아무튼, 그랬더니 감자는 덜 익고, 양파는 다 풀어져 버리고, 대파는 향이 다 날아가서 넣은 티도 안 났다. 그날의 닭볶음탕은 ‘닭+감자 국물’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나는 재료를 순서대로 넣는 걸 무시하지 않는다. 닭볶음탕은 재료들이 익어갈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그래야 맛이 난다.


닭볶음탕을 만들다 보면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누군가는 감자 같은 사람이다. 천천히, 오래 끓여야 맛이 난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맛이 들기 시작하면 국물까지 달라진다. 반면 대파 같은 사람도 있다. 마지막에 툭 얹어주기만 해도 금세 향을 퍼뜨린다. 어떤 사람은 스무 살부터 하고 싶은 걸 찾아 돌진하고, 어떤 사람은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방향을 찾는다.


나도 예전엔 남과 나를 많이 비교했다. 취준생 시절에는 동기가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에 덜컥 조급해지고, 막상 좋은 회사에 입사한 후에는 동기들이 좋은 실적을 냈다는 말에 속으로 괜히 위축됐다.


‘나도 빨리 끓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고 마음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만 급하게 끓여봐야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덜 익은 감자를 꺼내면 속이 설익어 있다. 겉으로만 그럴듯한 것뿐이다.


독일의 대문호이자 철학자인 괴테가 한 말은 이제 너무도 유명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닭볶음탕을 끓일 때 감자가 언제 다 익을지 계속 들여다보며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고, 기다리면 된다. 빨리 끓인다고 맛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불안하다고 뚜껑을 계속 열어봐도 안 된다. 오히려 속만 타고 국물 맛은 덜 우러난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끓이느냐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맛을 향해 가고 있는지다. 내 인생도 재료가 다 익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하고, 방향만 맞으면 속도가 조금 느려도 괜찮다. 계속 끓이는데 감자가 안 익고 버티겠냐고. 불을 끄지만 않으면 감자는 언젠가는 익는다!


그리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 늦게 끓기 시작한다. 나보다 늦게 출발한 데다, 아직 모양도 안 잡혔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우쭐해서 ‘저 사람은 아직 익을 기미도 없네’ 하고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속도로 익어가는 중이다.


닭볶음탕의 맛은 재료가 다 익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감자도, 당근도, 대파도, 닭고기도 각각의 역할이 있다. 한 가지라도 빠지면 그 맛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닭볶음탕을 끓일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끓는 시간’이 다르니까 조급해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없다고.


닭볶음탕을 만들며 뚜껑을 덮고 10분을 기다린다. 국물에서 풍기는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진다. 아마 나도 내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그게 나만의 맛을 내는 방법이니까.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나’와 ‘내 또래들’을 비교하는 밈 짤을 봤다. 내 또래들은 ‘집을 장만했다’거나 ‘차를 샀다’고 자랑하는데, 그 사이에 낀 ‘나’는 행복한 얼굴로 작은 인형 키링을 꺼내 들며 ‘키링에 투자했다’고 말하는 그림이었다. 그 나이쯤 되면 집도, 차도 턱턱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가 정의한 속도에서 나만의 행복을 꺼내드는 모습이 기특하고 귀여워보였다. 그래서 ‘좋아요’를 꾸욱 눌렀더랬지.



<재료가 골고루 익어 제대로 맛있는, 닭볶음탕 레시피>

-번거로우니 닭은 손질된 닭볶음용 팩으로 사자. 감자, 당근은 큼직하게 깍뚝 썰고, 양파도 굵게 썬다. 대파는 조금 길다 싶게 어슷 썬다.

-냄비에 닭고기와 물, 생강 약간, 청주 2큰술을 넣고 한 번 끓여 잡내를 잡아준다.

-끓어오르면 닭고기만 건져내고, 새 물을 넣어 양념장(고춧가루 2큰술, 간장 4큰술, 설탕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후추 약간)을 풀고 닭고기와 감자, 당근을 먼저 넣어 끓인다.

-재료가 반쯤 익으면 양파를 넣고 중불에서 계속 끓인다.

-마지막에 대파를 올리고 한소끔 파르르 더 끓이면 완성.

-취향에 따라 떡이나 당면을 넣어도 좋다.



닭볶음탕.png


이전 04화촉촉한 스크램블 에그, 실패해서 얻은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