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는 여기저기서 휴가 사진이 올라왔다. 계곡에서 튜브를 타고 물놀이하는 친구, 제주도에서 맥주 들고 노을을 찍는 친구,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간 친구까지. 한껏 탄 피부와 웃음 가득한 표정들이 스크롤을 따라 줄줄이 올라왔다.
나는 그 모든 사진을 보고도 ‘좋겠다’라는 말조차 안 나왔다. 그 해는 여름휴가를 계획할 금전적 여유도, 며칠씩 자리를 비울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1mm의 틈도 없는 여름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아주 우울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한가하고 여유로운 날이 있으면, 이렇게 빈틈 없이 바쁜 날도 있는 거겠지. 게다가 내겐 냉장고에 연두부 한 모와 토마토 한 개가 있었고, 나는 그걸로 토마토두부냉채를 만들기로 했다.
우선, 냉장고에서 연두부를 꺼내어 물기를 뺀다. 토마토에 십자 모양 칼집을 살짝 넣고 끓는 물에 데친다. 껍질이 스윽 벗겨지는 순간은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져 시원했다. 살짝 식힌 토마토를 깍둑썰기로 썬다. 차가운 접시에 두부를 곱게 저며 담고, 그 위에 토마토를 올린다. 양파를 잘게 다져 올리고, 소스를 둘러 부었다.
조리 과정은 단순하고, 시원하고, 담백했다. 숟가락으로 두부 한 점을 떠서 토마토와 함께 먹었다. 소스의 새콤달콤함이 혀끝을 톡 건드리고 토마토의 신선함과 두부의 부드러움이 순차적으로 느껴졌다. 씻고 나와 덜 마른 머리칼이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전혀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때는 쇼펜하우어를 다시금 열심히 읽고 있었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중에 이런 게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전에도 좋아했지만, 이날만큼 실감했던 날은 없었다.
어느새부턴가 여름휴가라고 하면 당연히 여럿이 어울려 왁자지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여행 광고에서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우와! 여름이다!’하며 다수가 우르르 떠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거의 세뇌 당하다시피 ‘여름=단체 휴가’라는 인식이 생겼다. 백 보 양보해서 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혼자 쉬는 계절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동남아 휴양지에 가더라도 최소 둘이서는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떠나서는 계곡이든 바다든, 술이든 불꽃놀이든, 사진으로 인증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야 대세에서 떠밀려 나오지 않았다는 걸 모두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 나만 빼고 다 같이 떠나는 것 같으면 불안했고, 나도 뭔가 계획을 세워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여름, 나는 집에 남았다. 연두부와 토마토 하나를 반으로 썰어 놓고, 내 휴가는 여기에서 시작되고 여기에서 끝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끄러운 여름 대신 고요한 여름을 택한 거였다.
의외로 그 시간이 나를 살렸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시간을 필요한 만큼 들여 점심을 준비했다. 에어컨 바람이 식힌 부엌 바닥은 서늘했고, 싱크대 위에는 햇빛이 하얗게 번졌다. 두부를 저미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숟가락으로 소스를 부으며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너무나도 달큰한 평화였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교류를 통해서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에야말로 내가 선명해졌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겨우 내가 됐다. 조용히 토마토 껍질을 벗기다 보면 평소엔 듣지 못했던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렸고, 조심스럽게 두부를 저밀 땐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게 느껴졌다. ‘나 살아 있다’는 증거를, 요란한 해변 인증샷이 아니라 부엌에서 찾았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현대인은 고독을 두려워한다. 외로움이 두려워서, 혼자 있는 모습이 남들에게 ‘인기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불안해서. 그래서 더 많은 약속을 만들고, 더 많은 모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웃는다. 하지만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것도 그 지점이었다. 외로움은 결핍에서 오지만, 고독은 충만한 마음에서 온다. 외부의 다른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내가 가득 차 있는 상태, 그래서 오히려 그 시간이 즐겁고 안락한 상태,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게 새삼 좋은 상태. 나는 그 여름에 그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토마토 껍질을 벗기고, 두부를 저며 담고, 조용히 혼자 먹는 한 그릇의 점심으로.
그날 이후로 나는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챙기게 됐다. 회사 사람들과 회식이 잡히더라도 혼자 있고 싶을 땐 정중히 빠지고, 주말에도 약속을 과감히 줄였다. 그 시간에 집에서 혼자 요리를 했다. 토마토두부냉채를 다시 만들 때도 있었고, 전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더 여유로워졌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혼자 있을 때 주로 번뜩 떠올랐다. 광고 업무에 대한 것이든, 에세이 글감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게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오히려 더 즐거워졌다! 혼자 있어 봐야,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법이잖나.
혼자는 나쁜 것이 아니다. 가끔은 혼자가 좋다, 정말로!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누가 백날 귀에 대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깨달아라’하고 말해도 소용 없다. 직접 경험하고 깨닫는 수밖에!
<혼자 먹어도 맛있는 토마토두부냉채 레시피>
-토마토에 십자 칼집을 살짝 넣고 끓는 물에 데친 뒤 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작은 깍둑썰기로 썰어 모양을 살려 담아둔다.
-양파는 곱게 다져 준비한다.
-연두부를 손가락 한 마디 두께로 저며 접시에 곱게 담는다.
-두부 위에 토마토를 올리고, 그 위에 다진 양파를 얹는다.
-물 150ml에 식초 1작은술, 간장 1큰술, 설탕 1/2큰술,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잘 섞어 소스를 만든다.
-소스를 두부와 토마토 위에 고루 부어준다.
-마지막으로 통깨와 파슬리를 맨 위에 뿌려 데코해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