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본가에 갔다. 엄마랑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메뉴 선정권은 늘 엄마에게 있다. 나는 사실 회보다는 초밥파지만, 결제권자는 엄마니까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엄마 카드’의 위엄이다. 엄마가 ‘그냥 회나 시켜서 먹자’고 해서 광어, 우럭, 연어 3종 모둠회를 주문했다. 사실 엄마는 연어가 느끼하다며 싫어하셨지만, 이건 주문권자(?)의 재량으로 슬쩍 끼워넣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주말 저녁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는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바로 그 회를 얹어 ‘엉터리 초밥’을 만들어 먹으려는 거였다.
요즘은 유튜브에 없는 레시피가 없다. 초밥 샤리(밥) 만드는 법도 금세 검색할 수 있었다. 식초:설탕:소금 비율만 맞추면 된다고 했다. 물론 전문 스시 오마카세에서 내주는 초밥 같은 퀄리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집에서 흉내내기에는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해놓고 배달이 도착할 동안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슬쩍, 아주 자연스럽게.
“엄마, 혹시 밥해둔 거 있어?”
엄마는 내 속셈도 모른 채 대답했다.
“회 시켰는데 밥은 왜 찾아? 아침에 냄비밥 했는데… 오늘 물양을 잘못 잡았나 너무 고슬고슬 날리게 됐어. 그걸 누가 먹나 걱정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튜브에서 말하길 초밥은 된밥이 잘 맞는다고 했다. 질게 지은 밥으로 초밥을 만들면 밥이 뭉치고 떡져서 형태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그러니 엄마가 말한 그 고슬고슬한 밥은 오히려 초밥용으로 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튜브 보면서 식초물 만들어 밥에 섞으니 딱 알맞은 샤리가 완성됐다. 밥알이 하나하나 살아 있고 손에 들러붙질 않아서 초보자도 어설프게나마 초밥 모양을 잡기가 좋았다. 평소처럼 질게 밥이 지어졌다면 아마 물컹한 초밥이 됐을 것이다. 초죽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거야 말로 ‘럭키비키’ 아닌가. 엄마가 밥을 지을 때는 분명 망했다 싶으셨을 텐데, 결국 나에겐 딱 맞는 결과가 되어 돌아온 거니까.
엄마는 나중에 ‘그 밥으로 볶음밥이나 해야지’ 생각하고 계셨단다. 그래, 초밥이든 볶음밥이든 오히려 딱 좋지. 매일 흰 밥만 먹다 질릴 타이밍이었으니까. 처음엔 실패처럼 보였던 것도 쓰임새를 바꾸면 성공이 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좋다. 망한 줄 알았던 상황을 반전시킬 때 말이다.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날, 예상도 못한 방해가 생기는 날. 그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지고 짜증도 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일이 나를 다른 길로 데려다 주었을 때가 많다. 그때는 지레 겁 먹고 한숨부터 푹푹 쉬던 나 자신이 조금 귀엽기도 할 정도. 그러나 결국은 그 ‘엉터리’가 내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는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의 세계’라고 했다.
모든 우연과 사건은 다 이유가 있고, 결국은 조화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는 뜻이다. 밥이 잘못 지어지는 것조차 어쩌면 나를 위한 우주적 타이밍이었는지도 모른다.
엉터리 초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연어 한 점이 샤리 위에서 두툼하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오마카세 셰프가 잡아주는 초밥보다야 당연히 모양은 훨씬 못하지만,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엄마도 한 점 집어먹더니 ‘생각보다 괜찮네’라며 웃으셨다. (물론 하나 이상은 안 드셨지만.)
잘못 만든 밥이든 뭐든, 결국 딱 맞는 쓰임새를 찾았으면 그만이지! 처음에 보기엔 실패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꼭 쓰임이 생긴다. 세상 망한 것 같아도, 내가 혹은 내가 만든 무언가가 엄청나게 쓸모 없게 느껴질 때도 너무 섣부르게 ‘실패’라고 판단하고 딱지를 붙이진 말자. 찾아보면 결국엔 다 쓰임이 있다니까?
앞으로는 뭔가 망한 것 같을 때는 ‘이거 망했다!’ 대신 ‘그래서 어디에 쓰지?’부터 고민해보도록 하자. 흠흠.
<다 쓸모가 있는, 엉터리 초밥 레시피>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2공기에 식초 2큰술, 설탕 1큰술,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뜨거울 때 잘 섞는다.
-밥을 넓은 그릇에 펼쳐 부채질하며 식혀준다. (사실 난 귀찮아서 그냥 두고 식힌다.)
-시판 연어 필레 또는 배달된 연어회를 키친타월로 살짝 눌러 물기를 제거한다.
-연어를 초밥용 사이즈에 맞게 한입 크기(약 5cm 길이)로 썬다. (자신 없다면 초밥용으로 썰려 나온 연어 필레도 있으니, 그걸 산다.)
-손에 식초물을 묻히고 밥을 한 숟가락 떠 동글납작하게 쥔다.
-그 위에 연어 한 점을 올리고 살짝 눌러 모양을 잡는다.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내고 간장, 와사비와 함께 낸다. (와사비를 연어와 샤리 사이에 조금 넣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