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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모니카 Feb 09. 2021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진 않았지만

나는 당신의 사랑에 찔렸다고 상상해줘요

모르셨겠지만, 1월 말일부로 퇴사를 했습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두 달쯤 한량처럼 놀 계획이었는데, 후처가 빨리 정해져 당장 다음 월요일부터 다시 일을 하게 됐어요. 매일 시간 가는 게 아쉬워서 아랫입술을 뜯고 있어요. 얼떨결에 주어진 휴일은, 밀린 책을 읽거나 맛별로 사둔 커피를 여유롭게 내려 마시는 데에 쓰고 있습니다. 자꾸 뱃살이 찌는 것 같아 술과 안주는 최대한 지양하고 있어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씻고 빨래를 갠 뒤, 서점과 도서관에 들렀어요. 코로나 때문인지 도서관에는 층마다 자외선 책소독기가 설치 됐더라고요. 시퍼런 불이 종잇장을 소독하는 걸 구경하면서, 아, 나도 저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소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냥 허옇고 멀건, 싱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어제는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어요. 며칠 전에 친구의 스쿠터를 얻어타고 가다가 경미한 교통사고 비슷한 게 났는데, 그때부터 무릎이 붓더니 좀 아프더라고요. 괜찮겠지 싶어 며칠 뒀다가, 외출하는 김에 병원엘 갔더니 엄청 혼났지 뭐예요. 이게 상당히 통증이 있었을 텐데 그냥 참았냐면서요. 제가 아픈 일에는 대체로 무뎌요. 코로나에 걸려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을 때에도 그저 열이 나는가보다 하고 말았으니까요.

마음이 아플 때에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답답해지면 그냥 글을 써요. 내가 글을 주렁주렁 매달 때는 마음이 복잡하단 뜻이에요. 오늘처럼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모두 당신 때문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올해는 사랑에 대한 글을 모은 책을 낼 거거든요. 그래서 쓰는 글이기도 해요. 내가 내내 당신 생각만 해서 사랑 타령을 하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자꾸 아니다, 아니다 하니까 오히려 민망하지만, 아니에요. 진짜.

며칠 전에는 얼마나 마음이 어지러웠는지 릴케를 다 찾아 읽었다니까요. 그, 왜, 있잖아요,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죽었다는 얘기. 그건 다 루머예요. 릴케는 백혈병에 걸려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떴거든요. 장미에 찔려 죽는다니, 너무 로맨틱한 상상이죠? 그러니까, 내가 당신의 날카로운 마음에 찔려 죽진 못하더라도 혹여 내가 어딘가 아파 보인다면 그냥 당신에게 찔린 탓이라고 상상해줘요. 교통사고라든가 코로나 같은 것 말고. 그건 너무 멋이 없어.

자, 나는 이제 또 책을 읽고 또 글을 쓸 거예요. 당신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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