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살을 썰어내는 일
찜찜하지 않으면 서늘할 일
점심에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이려고 생 돼지고기를 써는데, 꽤 예리한 칼로 썰어도 한번에 ‘숭덩’ 썰리질 않는다. 힘을 조금 더 주어 요령껏 고깃결을 밀어내며 썰어도 어쩐지 끝이 찜찜하게 썰린다. 고기 하나 써는 게 뭐 이렇게 찜찜할 일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남의 살을 썰어내는 일인데 이 정도로 찜찜하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서늘한 일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끊어내는 일도 마찬가지렷다. ‘그래도’ 마음을 썰어내는 일인데 이 정도로 쓸쓸하지 않으면 너무 서늘한 일이겠다.
찜찜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유난히 맛있던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으며 문득 당신의 입술 언저리가 떠올랐다. 묻고 싶었다, 당신도 쓸쓸하긴 했었는지. 지금은 그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안온하신지. 그렇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