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감정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익어 버립니다.
매일 아침, 샤워를 한 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묶어 올려놓고 토스트를 굽는 게 최근 생긴 루틴이다. 원래는 아침에 설탕 세 스푼 탄 에스프레소나 카페라떼 정도만 마시고 끝냈는데, 부쩍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서 간단하게 토스트라도 구워 먹기로 했다.
토스트를 매일 먹겠다고 야심차게 토스터도 구입했으나, 막상 쓰는 건 그냥 프라이팬. 기름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을 달군 뒤에 식빵 두 장을 나란히 눕혀놓고 노릇노릇해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제법 고소한 냄새가 나면 작은 집게로 얼른 뒤집어 반대쪽도 굽는다. 식빵 두 장을 굽는 시간은 2분 내외. 나에겐 명상 같은 시간이다. 잼은 하틀리잼과 카야잼 중에 그날 내키는 걸로 잔뜩 바른다. (여담이지만, 이 두 잼은 정말 악마의 잼입니다. 꼭 드셔보세요.)
매일 아침 토스트를 구운 지 이제 2주가 좀 넘었으니 제법 능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앗차, 오늘은 빵을 태워먹었지 뭐야. 프라이팬에 한쪽을 바삭하게 굽고 뒤집어 반대쪽을 조금 굽다가 전기화구를 얼른 껐다. 그런데, 잔열이 생각보다 높았고, 또 생각보다 오래 갔는지- 토스트가 까맣게 타버렸다.
나는 분명히 열기를 OFF 했다고 생각했는데, 잔열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이야. 다행히 바삭한 토스트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냥 먹긴 했는데. 어쩌면 우리가 완전히 꺼두었다고 생각한 무엇(열정이든 감정이든 뭐든)은 아직도 꽤 높은 온도로 우리를 태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미 타버린 토스트야 어쩌겠느냐만, 다음번엔 잔열에 빵을 태우는 일은 없도록 해야지. 그래도 잔열은 잔열일 뿐이라, 분명 사그라들 것.
그러고 보니 전기화구 한켠에 '잔열을 주의하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멋쩍게 써있다. 아, 주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