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모니카 Sep 28. 2020

지금을 낭만의 계절이라 하더이다.

"혹시 아오? 그날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그날 밤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좋아하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의 대사다. 큰 양반집 '애기씨'인 고애신은 밤이 되면 독립군 저격수로 변해 친일파를 응징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같은 사람을 노리는 경쟁 저격수로 유진 초이(이병헌 분)를 만나 정체를 들키고 만다. 훗날 고애신은 유진초이에게 '그날 밤 귀하에게 (내 존재를) 들킨 것이 내 낭만'이라고 고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격수(암살자)는 자신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된다. 존재가 들켜지는 순간 목숨은 내어놓은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럼에도 경쟁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킨 것이 낭만이라 말하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대사인지. 


조선 말기가 낭만의 시대였다면, 나는 지금이 낭만의 계절이라 생각한다. 봄이 연애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리라. 계절의 곳곳에 낭만이 묻어난다. 이를테면, 무작위로 음악을 재생하던 중에 마침 내가 딱 좋아하는 길을 걸을 때 딱 좋아하는 곡이 시작된다든가, 머그컵을 양손으로 잡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마침 딱 적당한 온도로 커피가 식어있다든가, 막연하게 누군가 계속 보고 싶었는데 마침 딱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든가.

한때 온라인에서 핫했던 짧은 문장이 있다. '사랑은 암살이 아니에요. 들켜야 시작해요.' 암살자인 고애신도 들켜야 낭만이라는데, 일개 범인인 우리라고 뭐 다를까. "혹시 아오? 그날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사진은 그냥, 어제 찍힌 건데- 표정이 생기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

매거진의 이전글 전원을 내린 뒤 잔열을 조심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