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전막

굴절된 시야

by 내려놔야 산다

​식당 주방보조로 출근이 결정되던 날,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쁨에

투박한 앞치마를 고쳐 매는 상상을 했습니다.

분주한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고

누군가의 허기를 채울 그런 날이 펼쳐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세상이 왼쪽 눈 너머로 비뚤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동네 병원의 소견서와 대학병원의 진료 예약서.

나흘을 기다려 마주한 결과는 '망막전막'이었습니다.


​첫 출근날부터 병을 핑계 삼고 싶지 않아

어렵게 잡은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자리였을지 모르나

나에겐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낼 소중한 밧줄이었기에

줄을 놓는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노화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이 불편함은

이제 그만 눈에 힘을 빼라는,

세상을 너무 날카롭게 재단하지 말라는

몸이 나보다 먼저 보내는 낮은 전갈인지도 모릅니다.


​직선이 휘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뚤어진 선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질서가 있고,

천천히 보아야만 알아차릴 수 있는 진실이 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야 하는 루틴을

이제는 내 삶 안으로 들어온 새로운 순서로 받아들입니다.


​사람은 결국 고장 나지 않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난 부분을 데리고도 제 날들을 살아내는 존재임을.

완전한 시야 대신 견디는 시선을 택하며

삶의 당연한 수순을 담담히 수긍합니다.


멀어진 주방의 소란함 대신
어른거리는 활자들 사이를 천천히 헤매는 일.
달라진 시야의 속도에 맞추어
또 그렇게 살면 되는 겁니다.


​사는 거, 별거 아닙니다.
까짓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