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나는 서울시 방호직 공무원에 최종 합격했다. (방호직은 건물을 지키고, 침입자나 거동 수상자를 계도하며, 반입 금지 물품을 검색하는 일을 담당한다.) 3년여의 수험 기간 끝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었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제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꿈도 생겼다. 평생직장이 생겼다는 설렘으로, 임용 통보를 기다리던 시간은 길었지만 행복했다. 당시 합격자가 많아 1년 가까이 대기해야 했지만, 그 사이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지루하거나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기다림은 나를 지치게 하지 않았다. 그 모든 시간은 ‘이제 곧 시작될 내 삶’을 위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설렘으로 가득 채워졌었다.
드디어 2020년, 나는 마침내 ‘노원구청' 으로 발령받았다.
내가 맡게 된 업무는 5층 구청장실 앞 안내데스크에서 민원인을 응대하고 구청장등의 의전 업무를 맡았다. 시간대별로 교대로 1층에서 민원 전화를 받거나 악성민원인을 응대했다. 입사 첫 달은 모든 것이 재미있고 새로웠었다. 평생직장이라 여겼던 곳에서의 첫 사회생활이었기에, 나는 더 친절하고 성실한 직원이 되려 애썼다. 누구에게나 밝게 인사했고, 악성 민원인에게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내 진심을 알아준 한 민원인이 ‘친절공무원’으로 나를 추천해 주었을 때는 아직 임용대기 중인 시보공무원으로서 이런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 뿌듯하고도 따뜻한 감정이 밀려왔다. 동료들도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여성이 드문 직렬에 새로 온 나를 “같이 일하게 되어 기쁘다”며 반겨주는 말들이 낯설지만 고마웠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사람과 일, 그리고 배움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청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던 시기, ‘노원구 서비스공단 노동조합’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들의 투쟁 현장은 내가 일하던 바로 그 자리, 구청장실 앞이었다. 시위자들은 20여 명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소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24시간 구청장실 앞을 지키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내 오른편에는 구청장실 앞의 시위대가, 왼편에는 행정지원과가 있었고, 앞에는 화장실과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있었다. 누구든 오가는 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나에게 '구청장실'이란 방호대상구역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매일 긴장과 안타까움 속에 근무했다.
얼마 있지 않아 나의 근무지가 시위자들의 투쟁지와 가깝다 보니, 그들이 어떤 문제로 단식투쟁까지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청소, 경비, 주차를 담당하는 고령 근로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고령친화직종으로 분류된 이들인 청소와 경비, 주차종사자의 '정년연장'에 대한 문제와, '근무조건 및 수당'에 대해서 연초에 구와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것은 노원구 조례예도 명시된 바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가 갑자기 노조의 입장을 들어주기에는 연간 약 '20억 원'의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기존의 약속을 파기했다고 했다. 단식투쟁을 하는 이유는, 구가 기존의 약속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시위 참여자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고, 수십 년간 근무한 고령자였다.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해 온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은퇴 후에 다른 곳으로 취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한창 돈이 들어갈 나이인데, 막막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일한 손으로, 마지막 남은 생계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정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그들의 입장에 있었다면, 너무나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을 가졌다는 설렘과 즐거움으로 일하던 마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만약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분노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노원구축은 그들을 노동자에서 '자(者)'를 빼고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사람대 사람으로 대하기보다, 기능으로만 대하는 세상의 냉혹함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예산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약속하지 말았어야 했다.
희망이 주어졌다가 사라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파기된 행정조치”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문이 닫히는 절망의 순간이었다. 그들이 소금물로 하루를 버티는 동안, 나는 매일 그 앞을 지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무슨 자격으로, 내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 첫 직장은 한 달 만에, 누군가의 마지막 투쟁 현장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