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믿어도 괜찮아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난다면

by 백안

책을 내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 책을 쓴다는 건 결국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쓴다는 뜻이고, 그 안에는 내가 마주했던 사람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었을까?"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그렇게 규정할 수 있을까? “


2021년 12월, “29명이 징계를 받았다”는 공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해냈다!'라고.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그 감정은 단순한 승리와 패배의 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일은 승패의 문제라기보다, 서로 다른 믿음이 부딪힌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단지 공무원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배운 대로, 노원구청이라는 세계의 ‘관행’과 ‘규범’을 신입 직원인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부정수령에 동참하라는 뜻으로 상급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들도 정말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단지, 그들과 내가 가진 믿음의 방향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은 누군가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녁 안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싸워왔는가'에 있었다. 그렇기에 ‘사회 구조’라는 과녁의 개념을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듯, 나는 독자들도 함께 사회구조라는 과녁을 느낄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2년여의 시간 동안 글쓰기 수업을 듣고, 수많은 철학, 인권, 명상, 종교 서적을 탐독하며, 내 생각의 구조를 하나씩 하나씩 설계해 나갔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면서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과거의 기억을 꺼내는 일들이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집착에 가까운 열정이 나를 태워버릴 때도 있었다. 그 뜨거운 불꽃에 삼켜질 듯한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과녁의 구조속에서 없어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다.

그는 바로 나였다. 세상의 과녁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내가 나를 지켜야만 했다.


나에게 ‘쓴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과 같다.

고통이 밀려올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통과시키는 힘.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끝내 살아내려는 의지.

결국 쓰는 자는 살아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나의 글이 세상과 만났을 때 당신의 세계가 조금이라도 넓어지고, 사랑이 단지 한 뼘이라도 확장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이 모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지난 3년간을 돌아보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나의 삶은 언제나 ‘연결’과 ‘사랑’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살아낼 수 있었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천사들의 목소리가 무한히 쏟아졌다.

무너진 내 안의 잿더미 속으로 그 빛이 스며들고, 나는 그 쿵쿵거리는 빛의 울림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결국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삶을 응원해 주는 또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들로 연결된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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