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by 백안



책을 쓰기 어려웠던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바로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믿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아름답다’의 사전적 정의는 ‘나답다’라는 뜻이지만, 나는 평생, 그 ‘나다움’을 사회의 평가에 짓밟히며 살아온 것 같다. 세상은 마치 복장과 머리 길이, 표정과 말투까지도 이미 정해놓은 것 같았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뿐 아니라, 심지어 화장실에서조차도 이상한 시선을 받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여자 화장실이 맞다”라고 직접 설명해도, “남자인 줄 알았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라고 설명을 해도, 남잔줄 알았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성별을 오해한 것은 그였고, 머리길이가 성별도 아닌데. 아니 애초에 남의 외모를 평가한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사회에는 여전히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폭력’이 존재한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군대에 갈 때 남성들이 강제로 머리를 박박 미는 일, 그 신체의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현실을. ‘가기 싫은 곳을 가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그 폭력의 구조가, 사실은 우리 모두의 몸에 스며 있음을.


나에게 닥친 사회적 평가는 집 밖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적인 성향의 기독교 신자이신 어머니는 사회의 시선에 매우 예민하신 분이었다. 세상은 정상/비정상, 선/악, 동성애/이성애, 남자/여자처럼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이 옳다고 믿으셨다. 그 경계 밖의 것은 ‘잘못된 것’이라 여기는 사고가 깊게 배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장례식을 논의하며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치마 상복을 입고, 가발을 쓰고 오너라. 그게 싫으면 오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평생 가족이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그 마지막 자리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조차 설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누군가에게는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쓰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3일간의 새로운 체험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곧 죽음과 다름없는 요구였다.


나는 '바디 디스포리아'라는 신체불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신체의 일부분인 가슴을 절제한 적이 있다. 겉보기엔 멀쩡한 가슴 쪽 부위였는데, 나에게 있어서 가슴이라는 부위가 없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 지는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2차 성징이 막 시작되고 가슴이 부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신체적 괴로움과 답답함을 느끼며 자해를 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에는 브라를 하기가 싫어 가슴을 가위로 잘라내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가슴 쪽에는 가위로 긁은 상처만 남았을 뿐이지만.

고통이 20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해, 나는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가슴을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내가 남성이 되고 싶다거나, 스스로 성별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차라리 남성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이 신체 위화감은 나의 10대 20대를 지배했었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참다 참다, 가슴을 포기할지 목숨을 포기할지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을 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신체 위화감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커다란 흉터와, 더 남자 같은 모습을 한 여자가 되었다는 ‘비정상성’의 평가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달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바디디스포리아도, 죽음에 대한 우울감을 느꼈던 것도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나아졌다. 어머니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으셨다. 내가 긴 시간 동안 ‘장애’를 고민해 왔다는 것도, 성별 표현을 다르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가발을 쓰고 치마를 입어라”는 말은, 내게는 “다시 죽으라”는 말로 들렸다.

나는 그때 깊은 배신감과 절망에 잠겼다. 아마도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가족에게서 받은 존엄의 상처는, 살면서 받은 그 어떤 아픔보다도 깊고 쓰라렸기에, 나는 모든 것에 선을 긋고 나를 살려야 했다.

그때,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강한 다짐과 함께 절연을 선언했다. 상처받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보다, 모든 것에 선을 긋고서라도 나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며 고립된 삶을 택했다.

그리고 또 하나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나의 아름다움'이었다.

책을 쓰기 전에, 나를 먼저 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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