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에게 가는길

그릴 수 없는 아름다움.

by 백안







장미와 몸


뼈가 시리도록 유난히 추운 계절이었다. 몸에 붕대를 푼지 겨우 2주가 지나서였을까? 붕대를 푼 날로부터 2년간 장미의 일과는 기상과 동시에 거울을 보고 절제된 가슴이 올바른 형태를 띄고 있는지 매일매일 확인하는 일로 시작됐다. 가슴절제수술의 과정중 '유륜이식술' 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그 부분이 잘 되었는지가 가장 신경쓰였다. 그러나 결과는 인터넷에 나와있는 다른 수술 경과사진들처럼 만족스럽지 못했다. 유륜이 제대로 발색이 되지 않았고, 울퉁불퉁 했다. 남자의 가슴도 여자의 가슴도 아닌 형태였다. 예쁘고 깔끔하게 볼륨감만 없애고 티나지 않는 수술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기대한만큼 결과가 나와주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온 몸의 고통을 겪으며 이렇게까지 애써 수술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 더 아물게 되면 더 만족스럽겠지...

좋아지겠지... 새살이 곧 돋겠지... 라고 하루하루 스스로를 위로하던 시간이 어느덧 2년이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장미는 몸에서 자유로워 지기는 커녕, 오히려 소중한 성감을 잃었을까봐 불안해 하기도 하고, 형태가 바로잡혀지지 않았을까봐 겁에 질리기도 했다.

옆으로 못눕는 자세로 2년동안 지내야 했다. 기침을 크게 하면 갈비뼈가 아리고 숨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장미는 몸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수술을 결심했는데, 때로는 오히려 몸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이제는 장미의 가슴없는 상태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어디 외출할때는 브래지어를 차고 안에 뭐라도 넣고 다니라고 했다. 극심한 신체이형장애로 인해 가슴절제수술을 한 이후에도, 여전히 가족들은 장미를 모난돌 취급했고,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장미의 '짧은 머리카락'마저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서슴지않고 장미의 머리를 때리며 장미의 짧은 머리카락을 모자로 가리라고 지시했고, 장미는 어머니의 폭력을 감내하고 또 체면을 살려야 했기에 모자를 푹 눌러써 머리를 가려야 했다.








아름다운 몸


장미는 아름다운 몸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어떤 형태를 가져야 내가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까, 더이상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지 않고 폭력을 당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갈 수 없을지를 끝없이 고민했다. 그러던 도중 유튜브에서 한 댄서의 춤영상을 봤다. 그녀의 움직임은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그 자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만큼 강력했고, 화면을 뚫고 넘어설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그래!!! 이거야!!! 이거라면 나도 멋있어 보일 수 있겠어!!!"


그 장면에 사로잡힌 장미는,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들었다. 그 무한대의 아름다운 동작의 일 순간을 포착해 그림으로 남겨두고 기억하고 싶었다. 그 정지된 상태로 돌아가서 포착 할 수 있다면, 자신도 그 아름다움의 일부라도 닮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미는 몇천번이고 댄스영상을 돌려보면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려고 스페이스 바를 연신 눌러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정지되서 포착할 수 없었다.


관찰력이라면 어디서든 지지 않고, 단 한번도 부족하다 느껴본 적 없었던 장미는 당황했다.


'왜 안돼는거지? 내 눈은 정확할텐데..'


몇시간을 고민하던 끝에, 장미는 해답을 찾았다. 바로 그 아름다운 순간이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흐름'으로 연속된 순간들이 계속해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된 순간, 장미는 그 댄서를 만나러 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무한대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다면, 그처럼 멋있어 질 수 있다면 장미는 더이상 가족들에게 외면받거나 폭력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미는 펜을 내려놓고 도화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펜 끝에서 탄생한 선과 색들은 의미없는 조합이 되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실패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장미의 몸에는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뜨거운 온기'가 온몸에 기적처럼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치 작은 불씨가 점점 커지며 차가웠던 마음을 따스하게 데우는 듯했다.



"이게 희망...이라는 것일까?"



그녀는 속으로 되뇌며 두 손을 천천히 모았다. 이제야 비로소,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희망의 분명한 형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분명 그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에게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