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춤이란,
Am 1:00 연습실의 불을 켜면서 아이가 들어온다.
아이가 댄스강사일을 시작하게 된 후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스물여섯의 아이는 졸업을 하고나서 바로 강사일을 시작하게 됐다.
매주 정규수업이 2개. 또 입시생 레슨까지 합하면 평균적으로 한달에 수업이 ‘15~16회’ 정도 있었다.
어김없이 이 시간이면 온종일 진행된 레슨을 마치고 안무를 짜러 연습실로 향한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수업에서 시연할 안무를 준비하고 정리 해 가야 또 수업을 진행할 수 있기에,
그녀의 집 근처의 연습실은 밤새 불이 꺼질일이 없다.
‘오늘 하루종일 뭘 먹었더라..‘
종일 먹은걸 떠올려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빈속에 먹은 커피 3잔을 제외하고는. 차가운 맨 바닥에 앉아 잠시 쉬는시간을 가진다. 지상에 소파가 있는 연습실도 있지만, 가격이 몇천원이나 더 비쌌기에 아이는 매번 지하에 있는 연습실을 찾았다. 연습실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공기로 아이를 반겨준다. 그 서늘함과 외로움을 홀로 견디는게 아이는 처음에는 제일 힘들었지만, 이 시간을 견뎌야 내일 웃는얼굴로 자신있게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내가 자신감이 있어야 학생들을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으로 시작해서 자신감으로 끝나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는 왠만하면 매 수업 새로운 안무를 준비해 가려고 노력한다.
얼굴은 이미 피곤으로 가득하지만, 아이는 최신 인기곡이 수록된 음악감상 플랫폼을 뒤지기 시작한다.
‘아.. 이거는 저번에 비슷한 수업을 했던 것 같은데..’
‘이곡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노래인것 같아..’
‘이곡은 너무 가사가 선정적이네.. 멜로디는 딱인데, 미성년자 친구들이 방학에 올때는 수업할 수가 없겠어..’
‘이것도 아니야.. 이것도..’
플레이리스트를 아무리 반복해 봐도 적당한 노래가 없는 것 같다. 아이의 취향에 맞으면서도, 트렌디한 감성이고, 노래가사가 선정적이지 않는것으로 찾아야 하는데..
고민끝에 아이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마구 넘기던 중, 평소 좋아하던 스타일의 신나고 경쾌한 팝음악이 들렸다.
80년새 스타일의 쨍한 비트와 중저음의 베이스. 그와는 대비되는 시니컬하고 높은 보컬의 목소리가 쿵쾅거리고 심장을 강타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 아이의 발이 순간 꿈틀거렸다. 그녀는 음악을 고를때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데, 이 음악은 들음과 동시에 온몸이 들썩거리면서 위로 튀어올라감을 느꼈다.
‘그래.. 이거라면 비트가 경쾌하고 신나는데다가, 박자도 꽤나 길어서 높이 뛰어오를 수도 있겠다..’
하체근력을 타고난 아이는, 타고난 조건으로 누구보다도 점프력에 자신이 있었다. 댄서가 화면에서 돋보이려면 동작이 크고 화려해야 하는데, 여러가지 기술중 아이가 가장 자신있었던건 바로 ‘뛰는 힘’이다. 그녀의 뛰는 동작은 마치 ‘깡-총-깡-총!’ 하는 토끼가 연상될 정도이다.
10년후 2010년 중반에 한창 유행했던 k-pop 안무 중에서는, 유난히도 뒤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카메라 앞으로 튀어나오는 동작이 많았다.
대부분이 아이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동작들을 안무의 구간에다 포인트 요소들로 많이 넣었는데,
그녀가 만든 고난이도의 동작을 스스로도 더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서 틈만나면 집 근처 야산을 오리걸음으로 등반하며 하체를 열심히 단련해 왔었다.
그녀가 카메라 앞으로 누구보다도 빨리 뛰어올라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신체능력도 훌륭했으나,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온 덕분이었다.
길고 긴 인내의 과정을 겪은 덕분에 아이는 나중에 독보적인 안무가로 성장함과 동시에, 점프력 기술에서도 높게 평가받는 댄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동작을 할때 애들이 엄청 환호해 주겠지..‘
박수와 환호 소리를 들으니,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아무리 힘들때도 아이를 보며 환호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피곤하고 고된 하루를 버티게 하는것은 삼각김밥도, 고기가 들어간 배부른 식사도 아니었다.
아이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람들이 그녀의 춤에 관심을 갖고 좋아해 주는 순간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아이가 받는 환호와 열성적인 지지가 바로, 그녀가 댄서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음을 인정받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일어났다.)
‘그래.. 이걸로 해보자..!!! 또 새로운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내가 창조하는 춤을 보고 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환호를 떠올리면서 다시 일어난다. 거울에 비친 아이는 어느새 피곤에 찌는 표정에서, 반짝이는 눈과 발그레하게 생기가 감도는 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상상만 했음에도 직감적으로 좋은 반응이 나오는 안무일 거란 생각에, 아이는 어느새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오랜만에 대박적 반응일 거라는 기대가 그녀를 흥분시킨다.
연습실의 유일한 친구가 된 거울에 비친 아이 자신도, 그녀를 보며 따라서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연습실의 차가운 공기가 뜨겁게 데워질 시간이다. 지금 떠오른 안무를 바로 놓치지 않고 기억하면서도, 곧 더워질 연습실의 공기와 마주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머리끈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