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춤을 만났을때
고독
아이는 강화도의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난 첫째 딸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어린 동생들은 늘 아이에게 의지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고, 동생들의 식사를 챙기거나 숙제를 봐주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늘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아이는 그것을 묵묵히 감당했다. 부모님이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셨을 때 조금 더 편안하게 쉬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는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여기며 덤덤히 받아들였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 날에도 동생들을 생각하면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
그토록 가족을 사랑하고 헌신적인 아이였지만, 표현이 서툴렀던 부모님은 아이를 자주 칭찬해 주지 못했다.
새벽 일찍 출근하시는 부모님은 언제나 바쁘셨고, 늦은 밤에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이는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알기에 투정 한번 부리지 못했다.
"내 일이니까, 내가 해야지. 아니면 누가 하겠어?"
아이의 다짐 뒤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깊은 고독이 숨어 있었다. 아이의 유일한 낙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달의 모양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달을 감상하며,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곤 했다.
열정
아이는 늘 바쁘게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에 짓눌려야 했던 그녀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학교 축제 무대에서 춤추는 친구들을 처음 보게 되었다.
빛나는 조명 아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아이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게 춤인가? 나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아이는 부모님을 졸라 댄스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처음 춤을 배울 때, 그녀는 어색한 동작과 엉뚱한 리듬에 스스로 민망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학원에서 나오는 음악들은 언제나 아이를 매혹시켰다. 발끝에서부터 몸 전체로 흐르는 음악의 리듬은 그녀를 사로잡았다.
어느 날, 동작과 음악이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순간, 아이는 몸 전체를 관통하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자유로움이었다. 뻣뻣했던 그녀의 몸이 서서히 음악과 하나가 되며, 마치 자신의 마음을 춤으로 표현하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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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거야."
그녀는 그 순간 춤을 사랑하게 되었다.
춤을 출 때면 언제나 몸 전체를 관통하는 시원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학원에서 아이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선생님의 관심과 칭찬을 독차지하는 학생이 되었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늘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답게, 꾸준히 연습한 덕에 그녀는 곧 여러 무대에서 러브콜을 받게 되었다.
달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밤, 아이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찼다.
연습 중 실수했을 때 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깔깔 웃었던 순간들. 몇 번의 연습 끝에 드디어 몸에 익은 동작을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 무대 위에서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느꼈던 온몸을 관통하는 쾌감.
그 모든 순간이 하나로 어우러져 그녀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고3 입시생이 된 아이의 하루는 고되었다. 해야 할 일들은 끝이 없었고, 매 순간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힘들지 않았다. 춤으로 채워진 하루가 그녀를 행복으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비록 몸이 피로에 지쳐도, 마음은 춤추는 순간처럼 가벼웠다.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있어."
아이에게는 그 확신이 있었다. 춤을 사랑하고, 춤과 함께하는 삶을 사랑하는 자신을 알기에, 그녀는 오늘도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은 달빛처럼 고요하고 은은하게 그녀의 마음속을 비추었다.
오늘의 달님: 보름달
오늘 문득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항상 누군가의 뒤에 서 있었던 것 같아. 엄마랑 아빠는 늘 바빴고, 동생들은 나를 필요로 했으니까. 내가 없으면 동생들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처럼 굴었고,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항상 많았어.
나는 맏딸로서 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고, 친구들이 밖에서 놀 때도 나는 동생들 숙제를 봐주고 집안일을 했어. 솔직히, 그게 싫었던 건 아니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가끔은 너무 외로웠어..
"나도 누군가가 나한테 관심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 나도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게 무서웠어. 사람들이 나를 약하다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아무도 내 외로움을 몰랐고, 나도 그걸 외면했지...
그러다 춤을 만났어. 춤은 나를 자유롭게 해줬고, 춤을 추는 순간 나는 진짜 나를 느꼈어.
이제는 춤이 내 삶의 중심이야.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자유와 성취감이 너무 좋아. 하루가 힘들어도 춤으로 가득한 내 삶이 너무 행복해.
"고마워, 춤. 너 덕분에 내가 나를 찾을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