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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애감을 극복하는 세레나데를 해내다!!!

by 백안


인천에 올라간 무지개 깃발


2018년 여름. 무더운 한 여름날, 인천에 무지개 깃발이 올라갔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아갔었어. 사회적 소수자들이 모여 자신의 긍지와 다양성에 대해 기뻐하고 서로를 축복하는 행사였지. 주로 청년층이 많이 참석하는 행사이기도 해. 그런데, 이제 막 처음으로 시작된 축제에서 수많은 성소수자들과 앨라이(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동맹자를 뜻함) 들에게 반동성애 세력으로부터 집단 폭행이 가해졌었어. 참가자들은 화장실도 한번 못 간 채, 반동성애세력과 그것을 방치하는 경찰들에게 둘러싸여서 10시간이 넘도록 광장 안에서 갇혀있어야 했었어. 성소수자단체를 상징하는 깃발을 부러트리고, 눈앞에서 참가자들에게 폭행이 일어나도 성소수자를 둘러싼 경찰들/경찰관계자들은 그 상황을 방관만 하고 있었지.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존재에 대한 혐오폭력이 난무했던 그때, 나는 한 목회자를 봤어. 바로 인천퀴어문화축제 반대집회 세력으로 유명한 목사였어. SNS등에서 여러 번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 터라,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지. 늘 성소수자의 존재에 반대하는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 그였기에, 나는 그가 직감적으로 주동세력 중 하나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어.


특히 2018년에 특정 집단의 광기를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그 현실이 더욱 실감 나더라.

기독교 단체가 아무리 성소수자의 존재를 미워하더라도, 용기를 내 맞서 살아갈 수 있다는 주제를 담아 버스킹 영상을 찍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어. 나의 삶의 존엄을 혐오로부터 지키기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한 작업이었지. 나는 매달 15번 이상 춤 수업에 참석하며 꾸준히 배우고 성장했고, 작품 영상을 찍기 위해 개인 연습까지 게을리하지 않았어.

성소수자의 모습을 담아낸 '엄청난 춤영상'을 남기겠다는 목표를 품고, 힐댄스부터 무용, 힙합, 크럼프까지 모든 장르에 도전하며 내 몸과 마음을 갈고닦았어.








살고싶었어. 존재에 대한 혐오가 쏟아지는 세상일지라도, 나로서 당당하게. 또 아름답게.


사진 @jang_film




나의 비애감을 극복하는 세레나데를 해내다


막상 교회 앞에서 영상을 찍기로 했는데, 너무 사지가 덜덜 떨리는 거야. 원체 집단폭행의 피해자로서 경험했던 트라우마가 컸던 탓이었겠지. 그 교회 1층에 있는 미용실 이름도 기독교이름이었던 데다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인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를 그 교회 앞에서 마주치면 어쩌나 하고 두려움이 너무 컸었어. 인천에서 맞았던 트라우마들이 자꾸 생각나고, 그 앞에서 엄청난 퀴어냄새가 나는 복장을 하고 춤을 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했었지. 그래도, 함께 그 자리에 가준 사진작가 언니가 있었기에 혼자는 아니어서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었어. 나는 용기 내 영상을 찍었고, 비록 춤은 뚝딱거렸지만, 나 스스로의 비애감을 극복하는데 충분한 작품을 남겼다고 생각해.






나의 비애감을 스스로 극복했어. 당연히 너도 할 수 있어!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해줄게!


나 사실 이동영상의 조회수가 수천만 번을 찍고 유명세를 얻어서 그 교회의 목사님에게까지 닿기를 바랐었어.

내가 엄청난 성소수자처럼 보이는 외모를 가졌더라도, 불가항적으로 멋지고 아름다워 보여서 아무도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작품을 남기고만 싶었지. 그래서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싶었었지.

그런데 기대했던 만큼 춤을 멋지게 추지도, 강하고 파워풀한 표현을 하지도 못했어.

사실은 춤은 누군가를 이기고 짓밟고 나의 세력을 과시하는 게 아니야. 춤으로는 그럴 수가 없었어. 춤은 단지 나의 소중한 몸을 표현 도구로 삼아 음악을 즐기는,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야. 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거든. 그래서 누군가와 싸우고 과시할 수 없더라. 춤을 추는 순간에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도였어. 그에게 닿기를.



어쩌면, 대한민국의 현시점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도하는 것이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어. 결국, 누군가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신념을 바꾸게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아무리 그것이 상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더라도, 그가 이를 수용할 이유로서의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그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야.


더군다나, 혐오 발언이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는 세상에서는 사회적 논의조차 사치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그들에게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라는 단어를 이해시키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기대일지도 모르겠어.




수많은 국내외 현대 신학자들이 성경에 나오는 레위기의 율법이 해석의 여지가 많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문헌이며, 성경에 나오는 여러 진리들 또한,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반영해야 할 상대적 진리라고 하더라도, 만약 상대가 그것을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로 믿는다면 어떨까? 그런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거야. 그 완고한 믿음과 신념들로 인해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짓밟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테지. 다양성과 시대적 변화를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고 완고하게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야.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어떠한 혐오와 폭력이 가해지더라도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용기. 그 믿음과 용기를 너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어서, 나 스스로의 아픔과 비애를 딛고, 그것을 극복해 내는 세레나데를 해내고 싶었어. 춤을 잘 못 추더라도,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교회 앞에서 저런 영상을 남겼던 이유는 바로 너에게 너의 존재 자체를 아름답고 귀하다고 "믿어도 괜찮아."라는 한마디 말을 진정성 있게 해 주기 위함이었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춤은 뚝딱거리지만, 나의 용기가 조금 느껴졌어?






그렇다면 성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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