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자신의 눈부심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바로 찾아와 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여자는 그리스인으로, 시로페니키아 출신이었으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여자는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상 아래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귀신은 이미 떠나고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5절~30절 中]
"여러분들은 성경에서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멀리서 찾아왔음에도 자신을 모욕적으로 '개'라고 호칭하며 냉대하는 예수님에게,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간구했기에 결국 구원을 받은 얘기라고 생각하시나요?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교훈은 분명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가 주는 숨겨진 교훈이 더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자비와 사랑의 실천의 대명사이신 예수님께서,
이 이방인 여성에게 굳이 '개들'이라는 모욕적인 호칭까지 하며, 매몰차게 거절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오히려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살아오신 예수님이, 병든 딸을 키우는 가엾은 이방인 여인에게 위계를 가르며 모욕적이기까지 한 '개들'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참 놀랍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이야기가 감추고 있는 진정한 교훈은, 바로 그 이방인 여인이 자신과 ‘개’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비유로 사용한 '개'의 표현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께 보편적인 사랑과 구원의 사명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여인은 당당하게 비천한 개들조차도 살아가기 위해 부스러기가 필요하다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그들과도 눈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이방인 여성인 그녀는,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닌, '자신의 소신을 밝힌 대답'을 통해, 예수가 사랑의 본질을 돌아볼 수 있는 말을 하며 그를 깨우친 것입니다.
마가복음 전체를 통틀어 예수와의 설전에서 이긴 유일한 인물이기도 한 이 이방인 여성은, 세상에 우열을 가려 사랑을 나누어야 할 존재는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짐작컨대, 이 이방인 여성의 눈빛은 아마도 사랑으로 가득 찬 맑고도 투명한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조차 그녀를 '개들'로 비유하며 사회적 질서 속에서 배제하려 했을 때, 그 용기가 조금도 시들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저는 최근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통해, 저는 저의 다양한 정체성 중 하나인 '성소수자'임을 밝혔습니다. 언론에 알려진 성소수자 일반인들 중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내부고발 공익제보자이자, 성소수 자라고까지 저를 소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오염된 언어가 아직까지도 자리 잡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상, 저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까지 미치게 될 좋지 않은 영향이 걱정되었기 때문 입다.
아직까지도 세상에는 존재 자체를 지칭하는 언어에 대한 차별과 혐오. 또 이분법으로 구분된 다양한 낙인들이 찍혀 있습니다.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남성/여성, 인간/비인간, 부자/가난한 자, 장애인/비장애인, 정상/비정상, 선진국/후진국, 사회주의/자본주의 등이 그러합니다. 이렇게 언어를 구분 짓게 되면, 한 존재와 다른 존재를 너무나 쉽게 타자화하는 정당성이 부여되고, 다른 존재를 비난하고 혐오한다면 마치 다른 집단은 결함이 없는 완벽한 존재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세상과 집단은 정말 무결한 곳일까요?"
절대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결한 곳이 아니지 않을까? “라는 의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상식이라는 늪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녁의 경계선을 인식하고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당연하다고 믿는 상식 안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치를 어둡고 슬프게 만드는 모든 외부적 요인에 대해 질문을 던져 그 답변을 강구해 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더 많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질 것입니다. 그 결과, 스스로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지요.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언어들에 그저 수용하기보다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져볼수록, 세상은 더 포용적인 곳으로 바뀌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소수자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가면서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저는 그 믿음을 절대 잃지 않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가진다면, 내가 속한 사회에 비애감을 느낄지언정 그 발걸음을 계속 디딜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마가복음에 등장한 이방인 여인이 자신이 은혜와 사랑을 받기 충분하다고 믿어마지않아 예수와의 설전에서도 당당하게 항변했던 것처럼. 바로 그 믿음처럼, '나의 눈부심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 스스로에 대한 그 믿음이야 말로, 그 어떤 공격적인 말을 듣더라도, 비애감으로부터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는 가장 큰 날개이자, 버팀목이 됩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내가 속한 사회를 향해 당당히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바로 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세상을 신뢰할 용기도 같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지향해 나아가야 할 종착지인,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