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선물. 믿음

믿음: "아픔이 사랑이 되는 세상"

by 백안




인간은 사랑, 친절, 헌신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모두 태어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사랑, 친절, 헌신이 필요한 뿐인 존재로 모두 끝나는 존재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는 현재 OECD 가입 국가 중, 압도적으로 자살률 1위라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1인가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청년및 중장년 고독사의 가족 비율도 점점 높아져 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서로에 대한 돌봄의 기능이 상실되었거나, 돌봄에 대한 부재의 두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아픔이 사랑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흔히, 사랑, 친절, 헌신으로 가득 채우고, 서로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정 반대로는, 사랑과 헌신이 아닌 '이해관계'와 '처벌'로 인해서만 인간이 사고하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이것을 저는 '사탄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타인에 대한 연대와 공감능력을 점점 잃어가게 되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지요. 마지막 순간 우리에게 결국 필요한 것은, 연대와 공감뿐임에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 기준들로 사랑하기를 방해합니다. 나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요.

먼저, 우리는 그런 스스로를 탐욕과 수치심으로 옭아맵니다.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익과 손실에 따라서 스스로를 가치매기는 것이죠. 가지지 못한 것이, 곧 자신의 약점이자 수치심이라고 여기면서요. 그것은 한 인간을 두려움과 공포. 홀로 될지도 모른다는 비애감속에 가두곤 하지요.


그리고 사탄의 사고방식은, 타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그러한 기준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평가하다 보니, 타자가 우리를 그렇게 보고 판단할 거라고 짐작하면서요. 사랑과 친절과 헌신이 아닌 평가의 눈길로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의 문을 점점 닫고 연대의 능력을 상실하게 하지요.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향하는 그 분노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퍼붓고는 합니다.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화를 내고 폭언을 하면서, 자신이 강한 존재라고 여기며 스스로의 수치심을 감추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우리가 자라나면서 오직, 사회에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가치들(과녁)을 기준으로 '평가와 판단'이 학습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라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라, '돈, 성공, 좋은 학벌,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등의, 가진 것을 기준으로 인간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반대로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 성적이 낮은 사람. 직장인이 아닌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열등하고, 책임감이 없는 존재라는 평가를 끊임없이 내면화하면서 자랐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에게 굉장한 폭력이 내면화되는 과정입니다.


가진 것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매겨지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것과 남들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는 방법들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학생일 때가 행복했지.."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다가 해 보신 적이 있나요? 우리가 성인이 되어갈수록, 점점 더 그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살아온 시간에 비례한 만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기준들도 늘어나게 됩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가 아니라, "저는 무엇을 하는(가진) 존재입니다."

라고 스스로에 대해 소개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자와 감정을 나누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타인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먼저 경계심을 갖게 됩니다. 처음 마주친 사람과 눈을 맞추고 다정하게 깔깔 웃었던 때가 언제였을까요? 우리의 눈빛과 얼굴근육은 점점 굳어가고 차가워지게 됩니다. 그 서늘한 온도는 보일러가 꺼진 한겨울의 차가운 방과도 같습니다. 온기가 필요할수록 이웃과 온기를 나누며 마음을 지펴야 하는데, 점점 더 스스로를 홀로 고립시키게 됩니다. 누구도 그의 고통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차가운 강물바닥 속으로 먼저 가라앉은 이웃들은 그 온기가 너무나도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먼저 간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와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픔이 사랑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탄이 선물한 자기 이익과 처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나를 돌아볼까요?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은 그저 연약한 나라는 존재를요. 나의 어린시절 해맑게 웃으며 넓은 공터가 보이면 뛰어가는 나를 떠올려 봅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키득거리며 세상을 바라보았던 순수한 나를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리고 무한한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입니다. 그 사랑에 조건 없이 문을 똑똑 두들겨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내려가고, 점점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 사랑은 무한합니다. 곧 우리를 둘러싼 그 가면을 내려놓고 자유로워 집니다.


다시 우리는 무한한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사람은 사랑과 헌신과 친절 속에서 돌봄 받으며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아주 연약한 존재이지요. 서로를 돌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돌보았기에 내가 누군가를 또 돌보고, 돌봄 받으면서 결국 이 지구라는 별과 이별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가야 할 길은, 오직 사랑으로 향하는 길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향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나 스스로 이웃을 평가와 판단 없이 바라보고 있지 않는지 점검 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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