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하마 Feb 04. 2024

님아 그 바늘을 빼고 가오

안 그럼 경찰 리포트 써야 된단 말이야ㅠㅠ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한국에선 겪어보지 못한 상황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뭐 그런 거 겪어보려고 외국에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나눌 이야기도 그중 하나인데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환자가 병원을 탈출해 도망가는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퇴원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도 보통 간호사에게 와서 집에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덕분에 모든 일 처리를 정석으로 끝낼 수 있었는데요. 미국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환자가 탈주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왜 도망갔을까

생각해 보면 제 담당 환자 중에서는 두세 달에 한번 꼴로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제가 점심식사를 하러 간 와중에 사라진 것 같아요. 간호사들은 매 근무 때마다 점심시간 등 식사시간을 위한 짝꿍이 생깁니다. 24시간 내내 환자의 상태를 주시하고 신체 변화에 재깍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1명이 식사하러 가면 남은 1명이 식사하러 간 간호사의 환자까지 일시적으로 담당하게 됩니다. 식사시간으로 주어지는 1시간 동안은 평소보다 2배의 환자 인원을 감당해야 되기 때문에 일일이 모든 환자를 살펴보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간 동안 환자가 도망가더라도 쉽게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도망을 갈까요? 도망가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일정한 거주지 없이 노숙을 하며 알코올이나 약물 오남용 문제를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제 경험 상 이분들은 병원을 본인이 오고 싶으면 잠깐 와서 쉴 수(?) 있는 숙박시설로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노숙하느니 무료로 식사도 주고, 병도 치료해 주고, 약물 중독 시 같은 계열의 약물을 치료용도로 제공해 주는 병원이 그들에겐 그저 편의시설이었겠죠. 하지만 병원에서는 흡연과 음주가 허락되지 않고, 치료용 약물도 최소한의 용량으로 처방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중독된 물질에 대한 갈망을 참기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그냥 병원이라는 장소에 갇혀있기 싫었을 수도 있고요.)



도망갈 수도 있지

이 상황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저는 무척이나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그날은 제 프리셉터 M도 근무하는 날이라 M을 붙잡고 "야, 어떡해. 내 환자 없어졌어!"라고 도움을 요청했죠. M은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IV는 빼고 갔어?"


그녀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IV를 빼고 갔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IV를 가지고 병원 밖으로 나간 경우엔 상황이 복잡해진다고 했습니다. 환자가 제발 IV를 버리고 떠났길 바라며 환자가 지냈던 방의 이불과 침대보, 휴지통을 샅샅이 뒤졌으나 끝 IV제거의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IV를 안 빼고 가는 게 왜 문제가 될까요? 환자가 병동 밖에 나가서 스스로 제거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갈 땐 가더라도 제발 IV는 빼고 가주세요. 침대 위에 잘 보이게 버려주시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myamericannurse.com)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들

최근 여러 매체에서 한 번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국가에서 허락하지 않은 중독성 있는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사건들 말이죠. IV가 있으면 그런 약물들의 혈관을 통한 주입이 용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퇴원에 앞서 반드시 간호사가 IV를 제거하고 이에 대해 명확히 기록으로 남겨야 후에 간호사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 같은데 비슷한 상황에 대해 병원이라던지 국가적으로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관련 정보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호사가 해야 할 일

만일 환자가 병원 밖으로 나가기 전에 IV를 제거하지 않았거나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경우, 원내 경찰을 불러서 리포트를 작성해야 합니다. (미국 병원에는 경찰이 늘 상주합니다.) 경찰에게 상황을 알리고, 리포트 형식에 나와있는 로 경찰 앞에서 작성하시고 경찰에게 제출하시면 됩니다. 경찰이 간호사에게 무조건 적으로 '환자가 도망치는 동안 넌 뭐 하고 있었냐'와 같이 타박하진 않지만 (경찰 분들도 이 상황에 익숙하십니다.) 그 상황에 처해있다는 자체가 상당히 찝찝합니다. 또한 리포트를 작성하는 동안 다른 업무가 밀립니다. (리포트를 작성하는 동안 담당하는 환자에게 코드블루라도 터지면...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독자분들께는 그럴 일은 없길 바랍니다.)


병동에 들어서면 위에 보이는 알콜솜과 밴드를 근무복 주머니에 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환자가 원할 때 상황이 허락된다면 IV를 바로 제거할 수 있도록 말이죠.



오늘의 교훈은 간단합니다.

'환자가 퇴원 시에도, 퇴원이 예정되어 있지만 협조적이지 않으며 탈주를 할 듯한 스탠스를 취할 시에도 무조건 IV를 꼭꼭 간호사가 제거하고 이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자!'가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도망간 환자가 버렸을지도 모르는 IV를 찾느라 쓰레기통을 비롯한 병실 온 구석구석을 뒤져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ㅠㅠ)


(커버 이미지: Photo by Stephen Andrews on Unsplash)

이전 07화 Arrest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