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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하마 Feb 11. 2024

함부로 뽑으면 안 되는 것들

아악, 그 손 멈춰!!!

지난번에 환자가 병원을 나가기 전에 꼭 IV를 제거했음을 확인해야 함에 대해 글을 적었는데요. 이번엔 반대로 의사의 처방이 없다면 함부로 제거되어선 안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왜 임의로 빼버리면 안 되냐고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신체에 설치된 관들은 모두 치료를 위한 것이므로 치료가 완료되기 전 제거되면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 환자가 부주의하게 임의로 제거하는 경우 그 과정에서 신체적 상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응급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위의 두 가지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래에서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대상자의 신체에 위치된 그 무엇도, 특히 체내에 삽입된 경우, 의사의 오더가 없다면 제거되어서는 안됩니다. 환자에게 오리엔테이션 문제가 없는 경우 환자분들 스스로도 조심하시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일했던 병원 환자군은 주로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등의 원인 때문에


1) 입원 뒤 알코올이나 약물 투여 중단 얼마 후 withdrawal (갈망)이 시작되어 혹은,

2) 이미 약물 오남용의 병력으로 인해 병원에서 투여하는 진정제가 쉽게 효과를 내지 않아 


환자들이 굉장히 agitated 되는 등 폭력적이거나 치료에 협력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덕분에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었습니다^^;

모든 장치를 짚고 가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그나마 병동에서 쉽게 보이는 것들 위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C-line: 주로 여러 가지 IV drip이 들어가는 환자의 경우 C-line은 상당히 유용합니다. 빠지지 말라고 애초에 삽관 시 suture로 고정해 두는 경우가 많아 드레싱 교환 때 "이크!"하고 건드리지 않는 한 웬만해선 안 빠지는 것 같긴 합니다. 다행히 vein에 들어가 있는 거라 빠져도 출혈도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안 빠지게 조심하는 게 여러모로 좋겠죠? (빠진 경우 온갖 sedatives나 opioid 진통제가 들어갈 경우 라인을 여러 군데 잡아야 할 테니 환자도 힘들고 간호사도 힘듭니다.)


L-tube: L-tube의 천적은 가히 콧기름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코로 집어넣는 관이다 보니 코에 고정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코의 피부에서는 땀이나 기름기가 배출되는 경우가 많아 고정시켰던 테이프가 금방 쉽게 떨어지고 맙니다. 딱 봐서 아슬아슬하다 싶으면 바로 코를 닦고 드레싱을 교체함으로써, 레지던트를 불러 L-tube를 재삽관한 뒤 Chest x-ray를 위해 환자를 이동하거나 혹은 벤트 환자인 경우 portable x-ray를 굳이 굳이 부르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바쁠 때 이 상황이 발생하면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Chest tube, pigtail bags: 이런 surgical drain은 보통 수술실에서 웬만하면 안 빠지게 세게 고정되어서 병동으로 올라오긴 합니다. Pigtail의 경우 C-line cathether 수준으로 얇기 때문에 빠지더라도 어마어마한 출혈이 예상되지 않아 그저 욕 한번 먹고 끝날 수 있겠지만, chest tube가 빠지면 응급입니다! (와, 상상도 하고 싶지 않네요.) 환자가 오리엔테이션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벤트 환자의 경우 환자 몸을 닦아주거나 기저귀를 교체하거나 등등의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빠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충분한 인력 (여러 PCA들)과 함께 처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Foley catheter: Foley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치매 환자나 취한 상태의 환자처럼 명료한 사고가 어려울 때입니다. 아무래도 체내에 위치되는 관인만큼 Foley의 사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못 한다면 불편하다는 마음에 그냥 그걸 뽑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제 환자 중엔 안 계셨지만 같이 근무하던 한국인 M선생님에게 벌어진 상황이었죠. (M선생님은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셨습니다.)

출처 - https://www.centerforurologiccare.com/berks-urologic-surgery-center/foley-catheter-care/

M선생님: 선생님 나 미칠 것 같아요, 환자가 Foley 뽑았어요...

나: 에엑??? 혹시 벌룬이 터졌나요? 환자 성별이?

M선생님: Alcoholic에 DKA에 drowsy 한 남성 환자인데 벌룬 안 터뜨리고 그대로 혼자 뽑아서 환자가 나한테 걸어왔어요. 걸어온 길에 핏자국이... (ㅠㅠ)


몇 년이 지났지만 이 대화를 복기만 해도 공포스럽습니다.

환자분들이 많이 불편해한다 싶으면 빈번히 assess 해서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방법만이 길일 것 같습니다.




일어나선 안될 상황

Self extubation/tracheostomy removal: 위에 거론했던 것들은 여기에 이르기 위한 빌드업이었습니다. 자, 이제 끝판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내 환자가 벤트 환자로 Endotracheal tube나 tracheostomy를 가지고 있는데 irritable 해져서 그걸 뽑았다? 초대형 응급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제게 발생했었죠...


저는 e-tube가 있는 벤트 환자를 어싸인받았고, 이 환자분에게 versed (midazolam)가 continuous iv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분도 약물 오남용 병력이 있어서인지 versed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담당의가 다른 약물을 더하거나 용량을 늘리는 것은 원하지 않아 대신 4-point restraint 오더를 받은 뒤 억제대를 적용해 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저는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참고로 미국 병원에서는 점심시간에 대해서는 급여가 나오지 않으니 알아서 쉬셔야 합니다! 정규직일 땐 다를 수 있겠지만 에이전시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은 그렇습니다.)


역시 사건은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발생하기 마련이죠. 어떤 이유에서인지 versed가 들어가는 와중에도 제 환자는 깨어났고, 억제대 적용 중임에도 괴력의 힘을 발휘하여 e-tube의 벌룬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self-extubation을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걸 왜 해내시는 건데요 (출처 - https://epmonthly.com/wp-content/uploads/2020/11/Endotracheal-Tube-623x441.jpg)

환자가 의식도 있고 obey도 되는 상황이라 일단 O2 mask를 씌우고 cardiac monitor에 연결하여 계속 상태를 보며 담당 레지던트에게 콜을 넣었습니다. 환자를 assess 하기 위해 열심히 말을 걸었는데... 세상에... 환자가 영어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ㅠㅠ 인도 쪽 언어만 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고전하고 있는 와중 attending physician과 anesthesia specialist가 혹시 reintubation 해야 하는지 몰라 같이 왔더군요. 다행히 저 두 의사 선생님들 모두 환자와 같은 인도 출신이셨기에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오히려 attending이 놀라더군요. "환자분 내 고향 근처에서 오셨나 봐. 내 언어가 통하네?" 이러면서요.) Attending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더니, 환자 상태 괜찮은 거 같으니까 이대로 02 mask 유지하다가 괜찮으면 weaning 해서 퇴원시키자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위 경우, 다행히 환자의 기도가 붓지 않아 자발적 호흡이 가능해서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의사의 지휘하에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extubation은 응급으로 간주하셔야 합니다. 이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선 환자를 처음 받을 때 e-tube의 깊이는 적절한지, continuous sedative IV가 잘 주입되고 있는지, 억제대는 적절히 고정되어 있는지, 환자가 irritable하진 않은지 등을 반복적으로 점검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모쪼록 벤트 환자 보실 땐 꼭 주의하셔서 제가 느꼈던 패닉을 겪는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Lawrson Pin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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