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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하마 Feb 25. 2024

근무 중 집에 가버린 간호사

다들 탈출하지 못해 안달인 병원

이전 글에서 병원을 탈출하는 환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했었었는데요. (환자의 병원 탈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병원을 탈출하고 싶은 사람은 환자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Y는 자메이카 출신의 30대 후반 여성으로, 저와 같은 시기에 같은 병동으로 입사했던 신규 간호사였습니다. 병동 근무를 시작한 지 두어 달 때쯤 되던 어느 날 출근해서 일하던 그녀가 갑자기 집에 가버렸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날은 병동에 환자가 가득 찬 반면 간호사 수는 조금 부족해서 간호사 1명 당 담당해야 할 환자의 수가 6-7명 정도로 원내 규정보다 1.5배 정도로 많긴 했지만 (인공호흡기 환자 3명 포함), 최악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늘 그랬던 편이라 놀랍지 않기도 했고요. 재정이 넉넉한 사립병원이었다면 아마 대체 근무 인력이나 추가 근무 인력을 투입시켜 줬겠지만 아쉽게도 제가 일하던 곳은 그럴 여력까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느 날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오전 11시쯤 갑자기 차지 간호사가 와서 "얘들아 환자 어싸인 다시 확인해~"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가서 보니, 각 간호사마다 담당할 환자가 1-2명씩 늘어있더군요. 심지어 차지 간호사에게도 돌볼 환자가 생겼습니다. (차지 간호사는 병동 전체를 관장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개별 간호를 제공하는 일을 담당하지는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던 Y가 본인이 담당한 환자 수가 너무 많아서 일 못하겠다며 오전 10시쯤 집에 가버렸다고 합니다.



도망치지 않은 자에게 남은 영광

근무자 중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병동은 돌아가기에 환자 입장에서 크게 우려할 것은 없습니다. 남은 간호사들이 무리하면서까지 어떻게든 그 책임을 나누어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명감이라고 그러죠. 예상치 못하게 어깨에 지워진 업무량이 늘었지만, 그 나름대로 저희는 일을 해냈습니다. (그게 간호사의 능력이죠. 세상의 모든 간호사 분들께 박수를!) 물론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꿍시렁꿍시렁 불평도 합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요. 중요한 건 Y 외의 모든 간호사들은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남은 9시간의 근무 시간 동안 협력해서 병동내 모든 환자들의 처치를 완수해 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 Y는

Y는 병원의 정규직으로 입사해서인지 혹은 저희 병동 내 인력이 모자라서인지 딱히 페널티를 받지 않았습니다. (... 간호부의 대처에 개인적으로 놀랐습니다.) 하지만 다른 간호사들은 그 이후로 그녀와 함께 협력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 업무 중에는 약물/수혈 전 이중 확인 및 응급 상황 시 대처 등과 같이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간호사들과의 협동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따라서 다른 간호사들이 Y와의 협력을 거부함에 따라 그 이후에 일하는 게 조금 더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원할 땐 뒷일은 나 몰라라 하고 떠날 수도 있는 그녀라 그조차도 큰 타격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어떤 업무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옆에서 보기에 직무에 대한 commitment와 전문성이 결여된 것 같아 많이 아쉬웠기에 저런 행동은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이 기억은 함께 남아 일하던 다른 간호사 동료들로부터 힘든 상황에서 도망치는 대신 서로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이때 체험한 팀워크의 기적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저는 직장에서 동료들 및 협력자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답니다. 팍팍했던 뉴욕 생활을 잘 버틸 수 있게 지탱해 준 그 시절의 동료 간호사들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마칩니다.


(커버 이미지: Bachman-Turner Overdrive – Takin' Care Of Business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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