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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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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 Sep 21. 2020

10. 폭력적인 아이, 원인과 해결방법

인간의 공격성에 관하여

아이가 '조금' 폭력적인 것 같은데...
남자아이들은 원래 그런건지,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날, 하레와 같은 또래 남자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음...하레가...좀 문제가 있어 보여요."




하레가 내 손을 잡고 놀이방에 가서 같이 놀자고 했다.

석고 소재로 된 40cm정도 크기의 초록색 공룡피규어를 들고 오더니,  

커다란 공룡의 입속으로 작은 공룡들을 다 쑤셔 넣어서 잡아먹고, 발로 짓이기고 밟아대며 즐거워했다.

"쿠오오오오!!!!"하고 울부짖고 바닥을 내리찍으면서.


하레가 그 크고 무거운 공룡으로 바닥을 내리칠 때 왼손 뼈마디를 한 번 세게 맞고 난 뒤, 조만간 뭐라도 부술 것만 같아서 높은 곳에 올려놓아도 도대체 어떻게 찾아내는건지 발견해서는 꺼내 달라고 했다.


어느 날은 작은 공룡 피규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길래 놀이방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정리해 뒀는데, 그걸 하나 하나 꺼내서 세심하게 줄 세우더니 커다란 공룡 변신 로봇 다리를 2개 가져와서 하나는 내 손에 쥐어주고, 하나는 자기가 들더니 줄 세운 공룡들을 마구 부시면서 공격을 했다. 


이렇게 자꾸 뭘 만들어서 부수는 게 폭력성이나 분노의 표출인건지, 아니면 남자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놀이인건지 혼란스러웠다. 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잡아먹고 때려부수는 놀이 위주로 노는 하레를 보면서 걱정을 해야 할지, 그냥 지나가는 건지, 바로잡아 줘야 하는건지 난감해졌다.


하레는 이런 폭력과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라서 뭘 몰라서 그러는걸까? 아니면 방치된채 무분별하게 봐온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길들여진 걸까?






세상에 태어난지 고작 2년 반이 조금 넘은 하레는 불안, 무기력, 슬픔이 디폴트였다.

행복, 애정표현같은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게 매우 서툴렀다.

기분이 좋을때면 극단적으로 히스테릭하게 들뜨기도 했다.


"하레야 사랑해, 아이 예뻐."하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동시에 어색해서 미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애정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레네 집은 서울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신도시에 있었다.

주말에 내가 서울에 있는 집에 가 있을 때는 영상통화를 하곤 했다. 

하레는 놓고 온 내 집게 머리핀을 들어올리며 '곤농'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말을 잘 못하니, 표현은 못하지만 집게핀의 입을 벌리면서 "고모꺼 집게핀, 공룡 입 같이 생겼어!"라는 표현이었다. 


내가 없을땐 보고 싶다고 울면서 그리워 했으면서 막상 내가 하레네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현관 유리문을 안 열어주려고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을 갔다.

자기가 갖고 싶은 건 늘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막상 그게 눈 앞에 있으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하는 것 같았다.


'놀이'를 할 때도 '아파' '아야' '아아무서워 도망가자'같은 놀이를 가장 '즐거워'했다.

그게 하레의 가장 '익숙한' 정서상태를 보여주는 단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공룡의 모든 것을 좋아해야 하는데, 하레는 그저 약하고 작은 공룡들을 줄 세워놓고 자기는 늘 최상위 포식자인 '티라노 사우르스'를 들고와서 때리고 부수고, 깨물고, 발로 밟는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티라노 사우르스를 양보하거나 '져주지'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감정'에 대해 다룬 한 책에서 '좌절감'과 '무력감'의 극치가 '폭력'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었다.

그래, 밖에 나가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집에 와서 만만한 마누라랑 애들 쥐어패는 남자가 절대로 '용감'해서 그러는 건 아닐테지.


지금 하레는 현실에서 자기가 갖지 못한 '힘'과 '통제력'을 원하는건 아닐까?

실제로는  다정다감한 하레가 유독 놀이할때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자신의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티라노 사우르스에 '빙의'하는 건 아닐까?




그때 일이 터졌다.

핑크퐁 사운드보드를 갖다놓고 "미안해" "사랑해" 같은 말들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전원을 켜두었는데, 갑자기 하레가 그 무거운 초록색 공룡과 또다른 커다란 오렌지색 공룡을 양손에 들고 그 사운드 보드를 마치 때려 부수기라도 할 듯 사정없이 쿵쿵 내리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가 뭘 알고 그런 것도 아닐텐데, 그때는 갑자기 화가 치솟아 올랐다.

말 그대로 똥 오줌도 못 가리는 아기를 상대로 이렇게나 엄청난 강도의 화가 치솟는 데에 강한 호기심을 느껴서 잠시 아이를 혼자 놀이방에 두고 주방으로 와서 내 화를 곰곰이 들여다 보았다.


요즘 너무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서 그래.

앞으로 주말엔 꼭 집에 가야겠어, 나에게도 좋은 자극이 필요해, 라고 생각했다.


또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나이의 아이에게 기본세팅으로 '공룡'이라는 너무 커다란 자극을 준 상태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매일 공룡을 1시간 이상은 멍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을 거라는 좌절감, 아무리 정서적인 교감을 가르치려고 해도 '아야!' 하고 아파하거나 더럽거나 커다란 자극을 주어야만 깔깔거리고 웃는 하레를 보면서 느껴지는 불안감이 죄다 합쳐진 것 같았다.


그 무렵, 어린이집에서도 일이 터졌다.

하레가 친구에게 '억지로' 공룡놀이를 하자고 조르면서 급기야 친구를 넘어 뜨려서 티라노 사우르스처럼 등을 발로 밟는 사건이 일어났고, 담임 선생님께서 가정에서의 교육과 주의를 당부하셨다.

(*참고: 핑크퐁 공룡동화같은 유아 컨텐츠를 보면 티라노 사우르스가 '폭군 도마뱀'으로 나타나면 다른 공룡들은 다 무서워서 도망을 가거나, 잡은 사냥감을 발로 밟고 있는 장면 묘사가 많이 나온다.)


뭐가됐건 내가 '양육자'로서 해야만 하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숙제가 또 주어졌다.




당시의 나는 이 4가지를 중점적으로 실행했고, 다행히 하레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1. 아이에게 즉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주기.

2. 놀이의 맥락을 바꿔주기.

3. 욕구를 대화로 표현하는 방법과 공감 가르치기. 

4. 공격성을 창의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 터주기.




1. 아이에게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해주기


민감한 부모는 아이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고 '아, 지금 배가 고프구나' 혹은 '심심하구나'를 알아차리지만, 둔감한 부모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아이의 불편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이를 보고 있을 때도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종종 놓치거나 잘못 파악하기도 한다. (중략)
이런 부모를 둔 아이는 부모의 둔감함을 일깨우고 자신에게 보다 집중토록 하기 위해 문제가 있을 때 신호를 강하게 보낼 수밖에 없다. 엄마가 알아서 살펴주지 않고, 신호를 미약하게 보내면 알아차리지 못하니 조금 아파도 많이 아픈 것처럼 울어젖혀야 엄마가 달려와 자신을 보살펴줄 것이라 생각한다.
<0~5세 애착 육아의 기적> p.144  - 이보연



뭔가가 마음대로 안될 때, 하레는 발버둥을 치고 구르면서 짜증을 부렸다.

내가 직접 이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정확한 '심정'은 절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개인적인 감정적 상처,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좌절, 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단호하게 대처하는 대신 어쩔 줄 몰라하며 후닥닥닥 요구사항을 들어주곤 했다.


나는 동생에게 너 자신과 하레를 위해서 '옳은 선택'을 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아이의 상황도 안타까웠고, 아이가 실제로 아프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바로잡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애가 어딜 가서 예쁨을 받겠냐고. 

다 떠나서 뭐가 안되면 '왜 안될까'생각해보고, '어떻게 할까'하는 습관을 길러줘야지 뭐가 안될때마다 길길이 날뛰면서 살면 본인도 얼마나 피곤하겠느냐고.


말도 안되는 짜증을 부릴 때마다 단호하게 '그런 행동은 앞으로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대신 '어떻게'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또 아이의 욕구를 미리 읽고 다양한 선택권을 주며 더 민감하게 반응해 주었다.

이 시기에는 하레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 모든 집안일과 개인적인 볼 일을 보고 하레가 집에 오면 100% 하레에게만 집중했다.


이 시기의 유아들은 '굉장한 관심'을 요구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직 자기 힘으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기에 어른의 관심을 끌어야만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완전히 집중'해주면 아이는 안심한다.

그리고 '격렬한 표현'이 많이 줄어들었다.



2. 놀이의 맥락을 바꿔주기

하레가 매일 반복하는 공룡 잡아먹기, 때려 부수기 놀이는 '폭력성'과 '무력감'의 분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외에 어떤 놀이를 해야 하는지'몰라서 단순한 루틴을 반복하며 스스로도 지겨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을 활용해서 새로운 놀이를 자꾸 개발하고 제공해서 그 패턴에서 점점 풀려 나오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하레가 또 '곤농 놀이'를 하자고 하며 티라노 사우르스를 들고 오길래 내가 먼저 작은 공룡들을 붙들고 선수를 쳤다.

친구야, 케잌 먹자!


그리고 계속 상황극을 했다. 스테고 사우르스의 생일 파티에 친구 공룡들이 와서 축하해주는 연기를 했다.

"우와 진짜 맛있어, 너도 먹어봐!" "생일 축하해!" "오늘 와줘서 고마워." 

하레는 호기심 넘치게 보더니 동조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또 티라노를 가지고 와서 잡아먹기 놀이를 하려고 했을 때도 

어머! 치카치카를 안해서 이가 썩었네요!!!


하면서 옆에 있던 병원놀이 장난감을 집어 들고, 티라노의 충치를 고쳐주는 척을 했다.


이렇게 공룡을 가지고 '역할 놀이'를 확장해 나갔다.

동시에 하레가 원할때는 화끈하게 티라노 사우르스가 되서 마음껏 표현하게 했다. 

다이노코어 공룡옷을 입히고 부직포로 공룡 꼬리랑 손에 끼우는 장갑도 만들어 주었다. 


으아아~ 너무 무서워~~!!

하면서 찰진 리액션도 제대로 해주었다.

대신 티라노 사우르스는 '집에서만' 하는거야,'아빠랑 고모랑만' 하는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친구들에게 '곤농'을 강요하며 들이대고, 넘어 뜨리고 '이겼다'며 발로 밟으면 '안돼'. 친구들이 '아파', '싫어'라고 했다.  

하레는 나를 웅크리게 하고 발을 올리고, 등을 '한 입' 먹으면서 츄릅츄릅 소리를 내며 티라노 사우르스가 되었다.


진짜로 '깨물고' '쿵'하고 발을 올리던 때도 있었는데, '놀이'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는 발도 살살 올리고, 무는 것도 진짜 물기-> 옷만 물기-> 은근히 물면서 눈치보기 단계를 지나->  무는 척만 하길래 나도 걱정은 내려놓고 다 받아줬다.


나중엔 끌어안고 서로서로 얼굴을 '으가으가'하면서 잡아먹기 놀이도 했다.

머리가 땀으로 촉촉히 젖고 '물!'하면서 물을 달라고 해서 주자 한참을 꿀떡꿀떡 마실 정도로 신나게 공룡놀이를 해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하레는 나에게 티라노 사우르스를 건네고 자기가 작은 공룡이 되어 '져 주기'도 했다. 또 4세 무렵에는 달리기를 하다가 나에게 지자 "에이, 졌네!"하고 너무나 멋지게 패배를 인정해서 내가 감동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절대 지지 않으려는' 아이는 '절대 져서는 안될 할 절박한 이유'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레를 보면서 했다.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고 아이와 함께 풀어나가면 의외로 문제는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고.





3. 욕구를 대화로 표현하는 방법과 공감 가르치기


나는 내 주위의 모든 것을 멸망시켜야 한다. 그래야 지배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는 매력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폭력으로 뺏어낼 수 있다. 
<군도> - 프리드리히  폰 쉴러


마침 이 시기에 리서치를 위해 읽고 있던 책 중 하나가 토마스 뮐러의 <인간이라는 야수>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따지고보면 '똑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어째서 한 사람은 그토록 잔인한 범죄자가 되고 다른 한 쪽은 '위대한 문학가'가 되는 것일까? 하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의사소통'이라고 했다.


<군도>를 쓴 프리드리히 폰 쉴러와 <리처드 3세>를 쓴 세익스피어는 몇 십 년전의 프로파일링 기법에 비해서도 훨씬 월등한 수준의 심리조종 능력을 간파하고 그것을 '폭력'이 아닌 '문학'에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합리적 의사소통 능력과 가능성이 결여됨에 따라 언제부터인가 의사소통을 중단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고조되는 지점에 이른다. 이러한 모든 이력들은 의사소통이 매우 예민하게 다루어져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대화가 특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는 상황이 극적으로 악화되는 반면 대화가 다소 다르게 이루어질 때는 상황이 긍정적으로 전환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의사소통의 단절과 함께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대화가 끝나는 곳에서 폭력이 시작된다. 
<인간이라는 야수> p.231 - 토마스 뮐러


대부분의 범죄자들의 어린시절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과 소통할 능력과 기회의 결핍이 있었고,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스트레스상황에 처하고 고독했다. 

이럴 때 이들이 힘을 가지고 위대해지는 단 하나의 영역이 남는데 그게 바로 '판타지'라고 했다.


그들은 '눈을 감으면 강해졌다'

그리고 판타지의 영역은 무한하다.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

'폭력의 판타지'가 탄생하면, 평소엔 있는 줄도 모르고 눈에 띄지도 않던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도륙하는 일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아무런 '이득'도 없는 '범죄'라는 행동을 하는 이유다.

자신의 '판타지' 안에서 자신의 '힘'을 느끼고 싶어서.

그 무한한 힘.

'약한'사람이 자라서 '악한'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하레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타인에게도 '자신처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 주려고 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라며 듬뿍 쏟아 부어주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언어 자극을 주면서 말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말로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짜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또 하레가 구르면서 심하게 짜증을 낼때, 나도 하레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거실 매트위에서 마구 굴렀다.

그러면 하레는 짜증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아이의 행동이 '왜' 안되는지 말만 해주기보다,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것도 효과가 있었다.



4. 공격성을 창의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통로 터주기

하레가 '폭력성'을 드러낸 조마조마함이 있어서인지 다시 그때로 돌아갈까봐 아빠랑 둘이 저녁을 먹고 마구 구르면서 놀기 시작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그런데  아들에게 '힘'을 가르치고 그 힘을 놀이를 통해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건 아빠만의 역할과 원형이라는 것을 어느 육아책에선가 읽었다. 그래서 아빠랑은 다소 과격한 놀이들도 맘껏 하도록 했다.



↑ 또 나도 장난감 스티로폼 칼 같은 걸 사다가 같이 칼싸움도 하고, 아이를 데리고 바깥놀이를 많이 했다.

확실히 남자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다니면서 에너지를 분출해 주어야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레의 폭력적인 성향에 대해 다루는동안 나도 배운 것이 많았다.

특히 나 자신의 '공격성'을 다루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흔히 '공격성 = 나쁘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사실 이 공격성은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능력이다.


용암처럼 내 내면에 부글거리는 그 힘은 억누르거나 부인해야 하는 힘이 아니라 새 땅을 만들고 신세계를 창조하는 원동력일 수 있어요.
이 힘 자체가 창조력이냐 파괴력이냐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느냐에 달린 거에요.
이 공간이 열리고 닫히는 곳에 막대기로 표시를 해뒀다는 건, 다시 돌아올 때 정확한 지점을 찾기 위한 표식 같아요. 
모두가 분노나 공격성이란 감정을 불편해하지만,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분노했기 때문에 뭔가를 하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거에요.
분노란 없애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다 경험해보셨지요.
의로운 분노를 하고 이걸 제대로 쓸 자리를 찾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 할 일이에요.

<꿈에게 길을 묻다> p.178 - 고혜경



나 역시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우울증'과 '무기력', '낮은 자아가치감'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손끝 하나 까닥 못하다가도 때론 극단으로 치우쳐서 많은 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벌이면서 지나치게 바쁘게 살았다.


그 지난한 회복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은 결국 '우울'이란 '자신의 내면으로 방향을 돌린 폭력'이라는 것.

바깥으로 드러내 타인을 향해 가해지는 것이 아닐 뿐 본질은 같다는 것.


또 나의 '우울감'의 대부분이 내가 가진 '공격성'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저 '억압'하며 억눌러 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하레에게 해준 것처럼 나 역시도 더 건강한 삶을 위해서 나를 표현할 '창조적인 통로'를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상실의 체험이 강렬할수록, 그것과 관련된 공격성이 억압될수록, 미처 다루지 못한 갈등이 많을수록, 갈등을 감내할 수 있는 자아의 능력이 부족할수록 우울의 반응은 더욱 병리적으로 나타난다.
<애도, 상실과 마주하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가기> p.103 - 베레나 카스트


이렇게 기운 넘치고, 활기차고, 매일 삶의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하레도 그 생명력을 분출할 '올바른 통로'를 찾지 못했을 때, 그 엄청난 힘이 아이를 짓눌러서 매일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게임중독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성공한 기업가가 되거나, 착하고 조용하던 아이가 순식간에 살인마로 돌변해서 대량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을 일으킨 범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그런 심리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록이다.


엄마는 딜런을 여리고 예민하며 다정한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표현한다.

아무도 이 아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사건'을 저지르고 난 후, 지독한 우울감을 남모르게 겪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려해야 할 매우 불편하지만 분명한 '폭력의 원인'이 있다.

선천적으로 기질상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고, '공감능력이 결여'된채 타인을 도구로 보는 '포식자'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사건의 공범인 에릭 해리스도 이런 부류의 사람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극단으로 분류되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고 불리는 사람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한 인간이 성장하는데 있어서는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요소'들도 있다. 

아이가 타고나는 기질, 가정 환경, 주변 환경, 동년배 친구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


그런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서 남몰래 속앓이하는 엄마들이 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해도 매일 '한계'에 부딪히며 좌절하는 게 일상이 아닐까?


사이코패스는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 모든 문화권에 사이코패시가 약 2%의 비율로 실재한다는 사실은, 사이코패시가 또는 최소한 사이코패스에게서 발견되는 특성과 연관되는 대립유전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인류에게 '바람직함'을 시사한다. 아니라면 사이코패시는 진화 과정에서 제거되었거나 적어도 오래 전에 그 수가 줄었어야 한다.  <괴물의 심연 The psychopath inside> p.237 - 제임스 팰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살이 넘어서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도 놀랐던 나름 자신의 '사이코패시' 성향을 잘 다루며 살아왔던 제임스 팰런같은 사람도 있으니, '좋은 양육'에 희망을 걸어봐도 좋지 않을까.


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인간을 양육하는 일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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