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유주 Sep 14. 2020

9. 말 못하는 아이에서 투머치토커까지 1년간의 기록

말이 늦은 아이를 도와주는 방법 

물론 아인슈타인은 네 살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인슈타인이 아닙니다. 
아이가 말이 늦다고 지나치게 걱정하면서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현명한 부모의 태도는 아닙니다.
<오은영의 마음 처방전, 성장> 오은영



또래보다 1년 정도 언어발달이 뒤쳐졌던 31개월 남자아이가 투머치토커 too much talker가 되어가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기록해 보려고 한다. 


'조금' 정도가 아니라 또래 친구에 비해 '훨씬' 뒤쳐져 스스로도 답답해 하는 아이를 보는 일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일인지, 뒤쳐진 만큼 따라잡아야 하는 과정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안다.


혹시 같은 고민을 갖고 들어오신 분이 있으시다면 하레와 함께한 1년간의 언어 발달 기록을 보면서 인사이트와 희망을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소통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옆에서 지켜봐주기만 하면 아이는 열정적으로 언어를 습득해 나간다. 너무 걱정하거나 내가 뭘 잘못한건가, 하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하셨으면 좋겠다. 아이는 생각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잘 헤쳐나간다.




<순서>

1. 또래 친구들에 비해 1년이나 말이 늦었던 하레

2. 언어 발달이 중요한 이유 

3. 문제 원인 파악하기

4. 해야할 일

5. 하지 말아야 할 일

6. 하레의 언어 발달 1년간의 기록 - 하이라이트




1. 또래 친구들에 비해 1년이나 말이 늦었던 하레


아이들이 보통 언제부터 말을 하기 시작하나요?


하레가 스스로도 말을 못하는 걸 답답해하는 것 같아 하원하면서 담임선생님께 여쭤보니, "남자 아이들은 원래 좀 말이 늦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은 하시지만 표정을 보니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느꼈다.


며칠 뒤, 어린이집 새학기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가 하레가 심각하게 말이 늦은 편이라는 걸 깨달았다. 같은 반에서 하레만 말을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비슷하게 말이 늦은 아이가 한 명 더 있긴 했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아줌마, 왜 미끄럼틀 안타?"라고 물으면, "나 아줌마 아니야. 미끄럼틀 젖었어." 라고 자연스럽게 듣고 말했다.


반면에 하레는 '아빠, 곤농(공룡), 시어(싫어), 물, 때때요 (또 주세요)' 같은 간단한 단어로 된 말밖에 못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떼를 쓰고 짜증을 내거나 내 손을 잡고 직접 끌고가곤 했다. 


내가 하레에게 말을 할때도 몸짓과 표정을 크게 해가면서 천천히 말을 해야 했다. 주로 '말' 자체보다는 '분위기'로 알아듣는 듯했다. 물론 이것도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언어'라는 도구를 병행 사용하는 것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린이집 엄마들도 그때는 내가 속상할까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었는지, 나중에 하레가 말을 잘 하게 되고나서야 '하레가 말이 많~~이 늦었지.'하고 이때를 회상했다.


일단 평균적인 아이의 언어발달 정도를 알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36개월 두뇌가 좋아지고 자존감이 커지는 말걸기> 조하연 지음을 참고하니 하레는 고작 16-20개월의 언어수준을 보였다. 친구들보다 1년이나 뒤쳐진 것이다.




2. 언어 발달이 중요한 이유 


31개월인 하레의 나이에는 '훈육'과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못 알아 듣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기본' 자체가 안 되어 있기에 아무런 '교육'을 할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진도도 따라가기 힘들 뿐더러(실제로 이 시기에 스케치북 등을 보면 거의 선생님이 '대신' 해준 느낌이 물씬 났다.) 하면 되는 일과 안되는 일에 대한 기초 훈육도 불가능하다.


의사소통이 안되면 본인이 답답해서 투정과 떼만 늘고,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도 소외를 당하고("하레는 왜 말을 안해요?"라고 같은 반 친구가 나에게 묻기도 했다. '못한다'는 생각은 못한채, 아이는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못 알으면 타인으로부터 '부정당하는' 경험이 쌓이게 되어 심리적으로도 안좋다고 한다. 아이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성격과 인성의 기초공사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하레의 경우는 스트레스를 안전하게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인 '말'이 불가능해서 더 폭력적으로 짜증을 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펜실베이나 주립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언어능력이 발달한 아이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특히 분노를 제어하는 능력이 우수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ㅇㅇ을 하고 싶어요"라고 자신의 욕구를 차분하게 전하거나, 재잘재잘 얘기를 하거나, 숫자를 세거나, 즐겁게 말놀이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언어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능숙히 전달하지 못해 말 대신 짜증을 내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 p.94 - 와쿠다 미카





3. 문제 원인 파악하기


아이의 말이 늦어지는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1. 말하기, 듣기에 필요한 신체적인 장애가 있을 수 있다.

2.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의 경우,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보통 아이들에 비해 흥미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3. 충분한 언어적 자극, 상호작용을 하고 싶은 동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3가지 모두 가능성을 고려해두고 다각도에서 아이를 관찰하면서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만약 위의 두 가지, 

1. 신체적으로 언어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거나

2.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보일 경우는 

바로 전문가를 찾아가서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인 것 같을 경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가 그저 '다를' 뿐이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엄마부터 인지하셔야 아이를 잘 도와줄 수 있다.


초기에 하레가 묻는 말에 대답과 감정적인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던 시기에는 1,2 두 가지 가능성을 전부 열어두고 고려했다.


템플 그랜딘, 존 엘더 로비슨이 쓴 책들이 자폐인들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하레와 비교해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저자들이 '어딘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과학적인 검증들을 통해 나온 통찰을 기록한 책들이다.


참고한 책들:

1. 나의 뇌는 특별하다 - 템플 그랜딘

2.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존 엘더 로비슨 

3. 나를 똑바로 봐 - 존 엘더 로비슨


하지만 상어인형 사건헬로카봇 사건 등을 겪으면서 아이가 '자기 안에 갇혀' 있었을 뿐 바깥으로 나오는 방법을 몰랐다,는 걸 깨닫고 이 두 가지는 제외시켰다.


어느 날, 놀이방에서 놀다가 "하레야, (허공에 손사래를 치며) 아유 깜깜해. (스위치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가서 불 '탁' 해주세요."라고 하자 바로 알아듣고 가서 까치발을 들고 불을 켜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깡깡애(깜깜해).'라는 표현이 항상 궁금했는데 알게되서 너무 신났는지, 깜깜한 곳만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깡깡애!!"하고 외쳤다.


할 줄 아는 말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아는 단어나 사물이 나오면 "빵빵이야!" "까까야!"하면서 쩌렁쩌렁하게 말했다.


결국 하레는 지능, 감정, 소통욕구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고 '충분한 언어 자극을 받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혼자 집에서 TV, 유튜브와 함께 방치된 시간이 많았고, 하레엄마도 말이나 행동면에서 아이에게 적절한 롤모델이 되어주지 못했으니, 아이가 말을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6개월 동안 '충분한 언어자극'을 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영어 회화를 가르치면서 쌓아온 데이터들을 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해 보기로 했다. 만약에 그 이후에도 문제가 지속된다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보자고 하레아빠와 이야기를 했다.





4. 해야할 일


1. 하레의 경우에는 먼저 심리적 안정이 우선이었다.

다 큰 어른이라 할지라도 집에 불이나서 도망쳐야 하는데, 영어단어가 머리에 들어올리 없다.

일단 '생존'이 우선되고, '안전함'이 담보되어야, 호기심이라는 마음의 여유와 자원이 생긴다.

아이가 불안을 누그러 뜨릴 수 있도록 애착을 형성하고 안전감을 주는 일에 더 신경을 썼다.



2. 소통의 즐거움 알게 하기

어느 날, 하레가 쇼파에 앉아서 "나나나, 더 듀새오.(바나나, 더 주세요.)"라고 말하고는 '아, 이렇게 말로 하니 엄청 편하고 좋군!'하는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보통 간식이 먹고 싶으면 내 손을 잡아서 끌고 직접 가야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행동이 아닌 '말'로 표현하는 것의 즐거움, 자신의 의견을 전하는 즐거움, 이해받는 기분의 기쁨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만나고 헤어질 때, 밥 먹을 때, 선물을 받았을 때 하는 인사도 제대로 가르쳤다.(이전까지는 사람을 봐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3. TV시청시간 줄이기. 좋은 프로그램 선별해서 보여주기.

TV는 언어발달을 2배 느리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TV가 언어발달을 늦추는 이유는 '쌍방'이 아닌 '일방'적인 통행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TV를 당분간 아예 안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가서 '공룡동요'가 나오자 눈물을 또르르 흘리면서 좋아했다고 담임선생님이 '아예' 안틀어주는 것도 안좋다고 하셔서 좋은 프로그램을 선별해서 틀어주기로 했다. 


하레는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다음 동영상'을 무제한으로 틀어주고 방치된 이력이 있는터라 아이가 좋아해도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단호하게 금지시켰다. 


숫자송, 컬러송, 동요, 하레 또래들이 친구들이 관심을 갖고 주고받을 만한 주제, 하레가 좋아하는 공룡이나 동물이 나오는 동영상 중에서도 쿵쿵거리면서 화면만 나오는 것 말고 '대화'를 주고 받는 내용 위주로 틀어주었다.



4. 바디랭귀지와 표정을 다소 과장되게 사용하며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며 말한다.

'아이'와 함께하기 전엔 '헤이 지니 a.k.a 구 캐리언니'가 말하는 것만 봐도 몸둘바를 모를 정도의 오글거림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때 헤이지니의 위대함을 느꼈다.

몸짓과 표정을 크게 크게 하면서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사용해서 말한다.

이게 평소 성격과 잘 안맞을 경우(내가 그랬다), 제일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확실히 아이의 집중도가 '확' 올라가고 잘 알아듣는다.

오은영 박사님도 유아들에게는 다소 '과장된'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5.춤과 노래를 사용하기.

동요를 부르면서 노래가사를 몸으로 표현하며 춤을 추는 것도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좋은 방법이다. 아이도 매우 좋아한다. '언어교육'이라고 해서 진지해야할 필요는 없다. 동요를 틀어놓고 아이랑 거실 매트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면서 따라 불렀다. 하레는 앞머리가 땀으로 촉촉해지고 몸에서 쉰내가 나도록 율동을 하기도 했다. 말할 줄 아는 건 즐겁다는 것도 배우면서 신체놀이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6. 놀이와 연결시키기.

주로 장난감을 가지고 역할놀이를 하면서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좋아하는 공룡인형을 가지고 "어어, 하레야!!"하면서 말을 걸면, 정말 공룡이 친구가 된 것 같았는지 콧물방울이 팡팡 터지도록 웃어가며 좋아했다.



간식을 먹을 때도 할 수 있다.

고래밥을 꺼내서 상자에 있는 그림자 일러스트에 똑같은 그림을 맞춰보며 한봉지를 신나게 먹었다.

불가사리가 나오면 '아짝아짝'하면서 반짝반짝 작은별을 부르고, 상어가 나오면 '두둠두둠'하면서 비장하게 상어송을 따라 부르면서 둘이 계속 노래를 하고 말을 하며 과자를 먹었다.



7. 조용한 집은 아이의 언어발달을 멈춘다.

라고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셨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반 박자 정도 느리게 언어로 표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레 옆에서 마치 나레이터처럼 모든 사물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말로 표현해주었다. 아이가 코멘터리 버전의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느낌으로 주변의 사물과 현상을 '말'로 설명해 주었다.


거의 '하루종일' 아이랑 말을 해야 하므로 체력소모가 매우 컸다. 목이 쉬기도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왜 자국의 언어를 '모국어 mother tongue'라고 하는지를 이해했다. 한 사람이 처음으로 '말'을 할 수 있기까지 '듣기'라는 충분한 자극을 주는 사람이 바로 '엄마'이며 이것이 언어발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8. 말로 표현하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많이 칭찬해주기.

'말'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표현할 수 있게 된 후로 확실히 짜증이 많이 줄어 들었다. 그리고 짜증 내지 않고 말로 잘 표현했을 때는, 많이 많이 칭찬해 주어서 선순환을 만들어 나갔다. 


하레는 불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질적으로도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아이 같았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기에 '완전한 문장'이 아니면 말을 아예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기 수준에서 말을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말을 하기만 해도 방금 노벨상이라도 받고 왔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칭찬해 주었다.



9.아이가 말할 때 귀 기울여서 잘 들어주기.

사실 이 시기에 아이가 하는 말은 의미가 없거나 알아듣기 힘든 말이 태반이다. 그래서 잘 들어주는 일은 매우 많은 에너지가 요구됐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할 때 최선을 다해 '귀기울임'으로써 '인정'받는 느낌을 주려고 애썼다. 귀 기울여 듣고 무슨 말인지 알아내고,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고, 호응해주고, 대답해주려고 했다. '의미없는' 말 같은데 신기하게도 귀기울여 들으면 들리기도 했다.




5. 하지 말아야 할 일


- 할 줄 아는 말이 별로 없는데, 말하고 싶은 '욕구'는 컸던 하레는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마치 지버리쉬처럼 "니까니까니까야!"하고 소리치곤 했다. 로보트와 함께 놀면서 비장감마저 맴도는 게  너무 귀여운 나머지 "니까니까야!"하고 따라하면서 웃곤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게 아이에게는 굉장히 진지한 시도이자 말하기 연습이니 장난스럽게 대하거나 비웃어선 안된다는 내용을 어느 책에서 읽고 정신이 번쩍 들며 반성했다.



-아이의 유아어를 그대로 따라하지 말고 올바른 단어와 표현 가르쳐 주기.

'달팽이'를 '패팬니'라고 하는 등, 아직 발음이 서툴어서 자기만의 단어를 만들어낸다. 아이와 '소통'을 위해서는 이런 유아어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지만, 아이는 나랑만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해야 하므로 올바른 단어와 표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기만의 단어를 만들어서 쓰는 게 너무 귀여워서 자꾸 따라하고 싶은 걸 참느라고 힘들었다.



-인내심과 믿음을 갖고 지켜보기.

아이의 말은 쭉쭉 상향곡선으로 늘지 않는다. 훅 늘어서 한시름 놓았다가도 곧 조금 정체기가 있기도 하고 심지어 후퇴도 한다. 이미 뒤쳐져서 또래를 따라잡아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이렇게 정체기가 오면 굉장히 사기가 꺾이기도 했다. 


하지만 '학습곡선 Learning curve'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인내심을 가졌다. 내가 처음 낯선 나라에서 외국어로 말을 하며 생활할 때의 불안감과 걱정들을 떠올려보며, 이제 '세상'이라는 곳에 와서 처음으로 '언어'를 배워가는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아이는 말을 시작하면 열정적으로 배워 나간다걱정보다는 '좋은 언어적 자극'을 주면서 인내심과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면 된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모든 육아에서의 문제들은 다 '일시적'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배웠다.



부모가 품는 사소한 회의나 끊임없는 걱정이 자녀의 신념과 힘을 앗아간다.
<예민한 아이의 잠재력> - 롤프 젤린




6. 하레의 언어 발달 1년간의 기록 - 하이라이트 모음 (2019.03~2020.03)



본격적으로 하레에게 언어자극+교육을 시작한 게 2019년 '2월 말-3월 초'였다.


2019.03.11.월

하레는 요즘 제법 문장으로 말하기도 하고, 어휘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말로 내뱉진 못해도 '사과 어딨어?'하면 정확하게 그림을 짚어낸다.


오늘은 어린이집 마치고 병원에 갔는데, 엘레베이터 천장 부분에 덕지덕지 붙인 비닐같은게 뜯어져 있었다. 그걸 가리키면서 '찌져지' 이런 말을 해서 내가 '어~ 찢어졌네. 그치?'라고 대답해 줬는데, 저녁에 하레아빠에게 "하레 이제 '찢어졌다'도 알아."라고 이야기하자 갑자기 하레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걸어가서 식탁 뒤에 찢어진 벽지를 가리켰다.


/


2019.03.12.화

요즘 하레가 새로 하는 말들은 대부분 한 단어로 된 반말이다.

"가!" "빼!" 같은 것.

"야!"까지 더해지면, 하레가 새로 배우는 말 '대부분'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랑 놀면서 배운 말인 것 같다.


/


2019.03.13.수

하레보다 몇 달 늦은 친구의 딸이 요즘 "이게 뭐에요?" 개미지옥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전부터 드디어 하레도 "이게 뭐야?" 대잔치가 시작됐다.

정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걸 가리키면서 고장난 카세트 테이프처럼 "이게 뭐야?"를 연타로 물어본다.

그래도 귀찮기는 커녕, 반갑고 즐겁기만 하다.

드디어 우리 하레도 "이게 뭐야?" 개미지옥이 시작됐구나! 하고.

오은영 박사님의 책에 보면 "이게 뭐야?"라는 질문은 아이가 그동안 혼자만의 세상에서 궁금해만 하다가 드디어 "이게 뭐야?"라고 물어봄으로써, 해답을 획득할 수 있는 마법의 질문/카드를 획득한 거라고 했다.

하레도 지금 얼마나 신날까?하는 생각에 내가 다 신이 난다.


/


2019.03.14.목

아침에 7시 15분쯤 두두두두 내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벌컥 연 하레가 침대에 올라와 내 옆에 앉았다.

잠이 깰 때까지 쓰다듬고 뽀뽀해 주었다.

정신이 들었는지, 고사리 손으로 내 캐리어를 가리키더니 완전한 문장으로 "'아파'하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감동!) 며칠전에 내 캐리어를 가지고 놀다가 벨트에 손이 찧어서 아팠던 일을 그렇게 설명했다.


하레가 안아 달라고 하더니 싱크대 위에 핑크퐁 컵에 그려진 상어를 가리키며 "으으음~~"하면서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상어의 무서움을 표현한 건가? 했는데, 하레가 '나나나!! 으으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얼른 알아듣고는, "하레야? 바나나 우우웅~~해서 바나나 우유 만들어줘요?"하니까 "녜!!"하면서 반짝반짝 빛났다.


/


2019.03.22.금

저녁을 실컷 먹고 배가 불렀는지 자기를 식탁 아래로 내려달라고 했다.

처음엔 그냥 몸짓으로 표현하더니, 내가 "내려줘?"하니까 "네!"하더니, "빼!"라고 말하고,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빼에요!(빼주세요.)"라고 했다. ㅋㅋㅋㅋㅋ

요즘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엄청 늘고, 말을 하는 재미도 붙은 것 같다.

그래서 하레의 말에 더 귀 기울여 들어주고, 리액션 해주고, 새로운 단어와 문장의 자극을 주되, 동시에 하레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해주는 것도 병행하고 있다.


/


2019.03.28.목

아침에 화장대에 앉아서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데, 자기방에 가서 놀자고 옷을 잡아 끌다가 안되니"같이 가~~~!"라고 말을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같이 가?" 라고 물었더니, "응!"이라고 했다.


/


2019.04.01.월

아침에 내방에 와서 창 밖을 보고 있는 나에게 "여기서 뭐해?"라고 물었다.


/


2019.04.03.수

기저귀를 가는 동안 물티슈에 쓰여진 영어상표를 보더니 ABC송을 흥얼거리면서 불렀다.


'지이이~~'하고 흥얼거리면서 돌아다니길래, 전기뱀장어송인가 싶어 "찌리리~ 찌리리~"하고 같이 불러주자 '통했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


2019.04.10.수

자기 전에 "쨔자(잘자)."하길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자기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ㅋㅋㅋ


/


2019.04.11목

놀이방 문에 붙어 있는 동물 브로마이드를 보며 "이게 뭐야?"라고 물을 때마다, '악어'를 '강아지'라고 하고, '사자'를 '뱀'이라고 하며 장난을 쳤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발을 동동 구르더니, 나중에는 장난인 걸 알고 같이 즐기기 시작했다.

동물에게 각자 이름이 있고, 원래 이름과 '다름'을 인지하고 언어유희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


2019.04.17.수

공룡이름이 나오는 동요메들리를 틀어줬는데, 그새 리듬과 멜로디를 다 외워서 'ㅇㅇㅇ사우르스'하고 끝날때마다 '스'에 맞춰 '쯔!'하고 같이 따라 불렀다. 간혹 사우르스나 케라톱스처럼 '스'로 안끝나는 공룡이름이 있으면 '곤농!'하면서 얼버무려 불렀다.


봄이라 플라스틱 미끄럼틀에서 정전기가 나자 하레는 한 달이 넘게 미끄럼틀을 안타고 있다.

오늘 내가 놀이터에서 같이 놀다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자, "딸딸딸?"하고 물었다.

"따다닥 하지 않아?"="정전기 안나?" 인듯 ㅋㅋㅋㅋ


/


2019.04.18.목

상어송을 좋아하지만 가사를 몰라서 따라부르지는 못해서 '아빠','엄마'같은 아는 단어가 나오는 부분만 부른다. 며칠 전부터 '뚜루루뚜루'하는 후렴부분이 자기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건지, 발음이 안되는 건지 '찌그리그리애요~'라고 부르는데, 내 귀에는 이게 오리지널보다 더 중독성이 있어서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테니스장에 갔는데, 추웠는지 "툐ㅑ!툐ㅑ!툐ㅑ!(추워!)"하면서 뛰어 다녔다.


/


2019.04.19.금


간식으로 하레와 같이 '내가 만든 컵케잌'을 만들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완성되길 기다리면서 "까까, 앗뜨거에요!"라고 나에게 설명했다. 뜨거운데 맛있는지 "이거 뭐야, 뜨거!"라고 말하며 볼살을 떨면서 먹었다. 


/


2019.04.22.월

뭐가 잘 안되면 짜증내는 버릇을 고쳐주려고 "으아아앙!!하는 게 아니라 '안 돼요. 해주세요.'하는거야. 알았지?"하고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놀이방에서 아주 우렁차고 짜증난 목소리로 "안돼요! 안돼요! 안돼요!"하고 외쳤다 ㅋㅋㅋㅋ


/


2019.04.24.수

본인을 3인칭으로 '아가'라고 부른다. 


/


2019.04.29.월

'선생님'을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뭔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부르는 호출 용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닌닌니~"하고 나를 부른다.


/


2019.05.01.수

아침에 하레와 놀면서 내가 졸려하자, "코, 안돼요!"라고 혼냈다.


/


2019.05.06.월

자기 눈을 가리키며 "눙!(눈)"이라고 말하더니, "코야?"하며 말장난을 치며 씨익 웃었다.


자기 타요버스 뒤에 아빠를 태운 뒤, "타!"하면서 나도 타라고 했다. "3명은 무리야."라고 했더니, 갑자기 달려가서 물을 마셨다. "물이야."로 들은듯 ㅋㅋㅋ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며, "손톱 깎아야지!"라고 말하자, "까까?"하고 물었다.


/


2019.05.13.월

화단의 흙을 가리키며 "똥!똥!" 하더니, "똥, 시어!"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


2019.05.14.화

간식으로 거봉을 '포도'라고 하면서 주자 "커!"라고 말했다.


/


2019.05.23.목

"깜짝 놀랬네."를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말 하나가 더 생긴 게 좋은지, 툭하면 "깜짝 놀랐네!"라고 한다.


/


2019.06.03.월

어제 저녁에 내방에 들어온 쇠파리를 잡느라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그게 재밌었는지 아침에 눈뜨자마자 내방으로 달려와서 모든 상황을 깨알같이 재현했다. "갱이(개미), 잡을거에요."라고 했다.


/


2019.06.10.월

주문한 자전거가 도착해서 처음 타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지나갈때마다 부딪힐까봐 걱정이 됐는지 "아저씨! 안돼요! 아파요!"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ㅋㅋㅋ


자전거 핸들에 달린 기어를 자꾸 돌리길래 만지면 안된다고 했더니, "이게 뭐에요?"하고 물었다. "기어야."라고 하자, 자기 귀를 가리키며 "귀요?"라고 했다. ㅋㅋㅋ


/


2019.06.13.목

고구마를 '코쿠나'라고 한다. 콧소리가 잔뜩 들어간 발음이 아주 이국적이다.


/


2019.06.18.화

아침에 장난을 치며 하레 발을 입에 '앙'하며 넣었더니, "안돼. 맘마 아니야!"라고 말했다.


/


2019.06.19.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산딸기 나무를 발견해서 하레랑 신나게 땄다. 하레가 자꾸 "아끼. 아끼."하는데 내가 못알아듣자 손을 머리 위로 올려서 토끼 귀 흉내를 냈다. 전날 동화책에서 본 산딸기와 토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전에는 남들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들으면 체념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요즘은 신경질까지 내가면서 꼭 이해시킨다.


/


2019.06.20.목

아빠가 저녁에 다리에 휴족시간을 붙이고 있자, "우다다다 꿍해쪄요?"하고 물었다.


/


2019.06.25.화

서울랜드에 가서 공룡을 보고 온 게 재밌었는지, "아빠야~ 엄마야~ 아가야~ 빠방~ 곤농~뱀~ 가!(아빠랑 고모랑 나랑 아빠차타고 공룡이랑 뱀 보러 가자.)"라고 자꾸 이야기한다.


/


2019.07.03.수

저녁에 아빠랑 그림책을 보다가 당근 스티커가 붙어있자, "뗄까?"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


2019.07.04.목

자전거 탈 때 쓸 모자를 만들어줬더니, 모자를 가리키고 양손으로 뜨개질 흉내를 내면서 "엄마가 잉캐잉캐(이렇게 이렇게)" 해준 거라고 했다.


/


2019.07.11.목

요즘은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한껏 즐기는 것 같다. 그만큼 말을 못 알아들으면 속상함도 큰지 엄청 화를 낸다.

몸으로 표현하고, 다시 발음하고, 내 손을 잡고 끌고 가기도 하고, 다른 단어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정말 창의적이다.

내가 '읏쓰'를 못 알아듣자, '타요'라고 했다. '읏쓰=버스'였다. 그래도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럴땐 하레가 위축되지 않도록 표정과 말투를 신경쓰며 "미안해."하고는 바로 화제를 전환한다.


/


2019.07.19.금

퀵보드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면서 '노란 낙엽'을 보고 '치즈', '갈색푸들'을 보고 '멍멍, 사자'라고 했다.


/


2019.07.23.화

요즘은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얼마나 우렁차게 인사를 잘하는지, 예쁨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자기도 그 관심을 매우 즐기는 듯하다. 어쩌다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없네?"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


2019.08.10.토

밖에 나갔다와서 티슈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데, 하레가 물었다.

"피나요?"


/


2019.08.21.수

아침에 똥을 싸서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뱀이야? (뱀모양 똥이야?)"하고 물어보고는 기저귀를 보더니, "초코, 초코 아케-엠 (초콜렛 아이스크림 모양 똥이네)!"라고 말했다. 너무 웃겨서 "초코 아이스크림이야?"하고 물으니, 맞다고 해서 둘이 한참을 웃었다. '초코 아케-엠' 먹을거냐고 물어보니, 먹는 거 아니라고 했다.


/


2019.08.29.목

어휘가 많이 늘었다. "설거지 끝이야?"같은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서 깜짝 깜짝 놀란다. 


/


2019.09.11.수

놀이방에서 놀다가 '잠수함' 장난감을 들어 보이며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물-슝-배'라고 했다.

아직 쓸 수 있는 어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놀라운 응용력을 보인다.

문제는 너무 자기도 만든 단어에 만족한 나머지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에 도전하지 않으려 한다는거?


/


2019.09.18.수

자기 전에 침대에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가서 놀면서 나보고 '연어'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끝나면 또요, 한 번 더! 하면서.

책을 읽는동안 내내 장난감을 가지고 놀길래, '안자려고 꼼수부리는건가??'생각했지만, '다른 걸 하면서'도 집중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활동을 막으면 집중이 안되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그저 차분하게 계속 읽었다.

10번을 읽었다.

그런데 8,9번째 들어섰을때 하레가 내가 읽는 걸 들으면서 추임새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안 듣는 것 같았어도 다 듣고 있고, 내용을 외우고 있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집중하라고 혼내거나 섣불리 재우지 않길 잘했다,라고도 생각했다.

왜 하필 연어에 꽂혔지???궁금하기도 하고.


/


2019.09.22.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응급처치를 하는 일러스트가 있길래, 하레 눈엔 이게 뭘로 보일까 싶어서 "하레야, 이게 뭐야?"하고 물어보니 "응~ 아저씨 아파, 엄마(성인여자)가 '일어나~'하는거"라고 대답해서 하레아빠랑 한바탕 웃었다.

아직 말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고, 아는 어휘가 별로 없는데도 그 '적은 어휘'를 가지고 조합해서 표현하는 걸 보면 정말 신박할 때가 많다.


오늘 아침엔 어제 사온 '꼬꼬렛까까'를 달라고 하길래, 요즘 먹고 있는 영양제 '텐텐'처럼 이름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 "이건 '칙촉'이야."라고 했더니, "아니야!! 꼬꼬렛까까야!!"하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래, 초콜렛과자지.

반박불가다. ㅋㅋㅋㅋ


/


2019.09.24.화

요즘 '두 개', '세 개'같은 수개념이 생겼다.

어제는 웅진북클럽 '호랑이 vs 사자' 비디오를 보다가 '계속 틀어달라'는 말을 못하니까 "많이요! 세 개!"하고 외쳤다.

지금 하레에게 '세 개'란 엄청 많음을 의미하는 수인가보다.

'두 개'는 정확히 알고 있다.


/


6개월이 지나자, 이 정도까지 말을 할 줄 알게 됐다.


그래서 '언어치료 전문가'를 찾아가보지 않아도 되겠다, 이제는 지금처럼만 하며 자연스럽게 놔두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19.10.01.화

말이 점점 늘면서 이제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일이 늘었다.

오늘은 아침에는 춥고, 점심에는 더울 것 같아 반팔을 입힌채 바람막이를 입히려고 했더니, 안 입겠다고 우겼다.

그래서 내가 '바깥에 나가면 추워.'하자, 그래도 안입겠다고 해서 일단 들고만 나갔다.

춥다고 하면 입혀주려고.

그런데 바깥이 정말 별로 안추워서 하레가 나를 보더니, "이그빠. 추워 아니지?"하면서 거들먹거리듯 말해서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ㅋㅋㅋㅋ


/


2019.10.09.수 

잠자리 두 마리를 한 손에 움켜쥐고 또 잠자리를 잡다가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하레 손에 있던 잠자리들이 죽었다.

그래서 '손에 있는 걸 놔줘야' 새로 잡을 수 있다,고 하자 처음엔 내키지 않아 하다가 그렇게 계속 놔줘도 얼마든지 새 잠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자, 잡자마자 놔주기도 하는 여유를 보였다.

"슝할까?" "놔줬어." "엄마한테 가. 가서 맘마 먹어."하면서.


/


정확히 1년 뒤,

'언어'가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또래아이들과도 어른들과도 말을 잘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즐긴다.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사실 좀 귀찮을 때가 있기도 했다. (하레, 미안 ㅋㅋㅋ)


/


2020.03.04.수

어제부터 '수수께끼'를 즐기고 있다.

처음엔 몸짓이랑 같이 "나는 귀가 아주 길어. 나는 당근을 좋아해. 나는 깡총깡총 뛰어다녀. 나는 누굴까?"하면, "토끼!"하고 맞추거나 "어... 모르겠는데?"하더니, 이제는 밤에 자기전에 불을 끄고 말로만 해도 곧잘 맞춰서 언어능력과 추리능력, 상상력 같은 지적능력이 잘 발달하고 있구나 싶어서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자기도 재미있는지 '마차바여(맞춰봐요)'를 하자고도 하고, 자기가 문제를 내기도 한다.

아직 '설명능력'은 조금 부족해서 '나는 발톱이 있어. 누굴까?'하고 매우 흥분해서 크르렁 거리기도 하는데 ㅋㅋㅋ 그럴때 "티라노 사우루스?"하면 "맞았어. 들켰네."하면서 좋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8. 육아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고 항해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