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유주 Sep 14. 2020

7. 엄마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건강한 애착의 중요성

feat.르네 스피츠의 모성박탈 실험


그래. 기쁘다. 살아가는 즐거움. 아무리 마음의 상처가 아프더라도 말이야.
そうだ うれしいんだ 生きるよろこび. たとえ 胸の傷がいたんでも.
<날아라 호빵맨> 오프닝 행진곡 "Dreaming" 가사 중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하레는 밝아지고 있었다.

3일째 되던 날, 하레는 처음으로 밤에 한 번도 안깨고 푹잤다. (늘 새벽에 한 번 이상 깨서 서럽게 울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악몽을 꾸는 듯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날 무렵에는 집에서 같이 놀 사람이 생긴게 너무 신나는지 밤에 잠을 안자려고 하고, 어린이집에도 안가려고 했다.  밤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히면 기운없이 고꾸라져서 바로 자곤 했는데, 12시가 다 되어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껑충껑충 뛰면서 놀았다. 그러고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놀자!'고 했다.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하던 하레가 활짝 피어나는 걸 지켜보는 보람에 피곤한 줄도 모르던 나날들이었다.


새벽부터 같이 뛰고 웃고 깔깔거리다가 9시쯤 등원하면 어린이집에만 오면 피곤해하며 누워 있는다고 집에선 푹 쉬게 해달라고 담임 선생님께서 요청하실 정도로.




그저 영양가 있는 밥 잘 챙겨 먹이고, 잘 놀아주고, 많이 사랑해주고 예뻐해주면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아이의 성장과 발달, 육아에 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적인 아이의 신체, 정서적 발달과 이상 징후 등을 알아야 하레를 더 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레가 어린이집에 가고나면 집안일을 마치고 책, 유튜브강연 등을 보며 틈틈이 공부를 했다. 


궁금하거나 모르는 건 어린이집 선생님들, 주변 엄마들께 물어보기도 하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마침 생긴지 얼마 안되었던 오은영 박사님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틀어놓고 정주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르네 스피츠의 '모성 박탈 실험'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 점심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떨어 뜨렸다.

Emotional Deprivation in Infancy Study by Rene A. Spitz 1952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8O5jynza2n4&feature=emb_title


영상 속에 나오는 아이의 텅빈 눈빛, 허공을 바라보는 표정, 느릿느릿한 행동이 하레의 예전 상태랑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보육원에서 촬영된 것으로 신체적으로 모든 보살핌이 충족됐지만 (음식, 옷, 깨끗한 보금자리) 촉각, 청각, 시각을 포함한 정서적 자극인 엄마의 돌봄 caring이 주어지지 않은 아기들은 2살이 되기 전에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지능, 정서에 이상이 생겼다는 충격적인 실험이었다.


모성이 박탈당한 아이의 주요 특징도 하레와 똑같았다.

식욕이 없고, 잘 못자고 불면증, 악몽에 시달리며, 체중감소, 우울증, 짜증 폭발, 타인과 감정적 교류 미숙...

하레의 엄마는 비싼 유모차, 비싼 장난감, 비싼 옷을 빚을 내가면서까지 사주었지만, 정작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주지 않았고, 주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주 애착 대상', '안전기지 secure base'가 되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모의 이혼과 방치로 자신의 안전한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경험을 한 하레는 정신적으로 지진이나 태풍처럼 자연재해로 살던 집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난민이나 다름 없는 상태인 거구나, 싶었다. 


어른처럼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거나, 술을 마실 수도 없고 스트레스를 안전하게 풀 방법도 모르니 자꾸 아프고 멍하게 정신을 놓고 기운없이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구나. 어른으로 치면 현실이 너무 감당하기 버거워서 알코올 의존증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하레에게 언제나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마음을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주는 걸 육아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나 자신도 엄마와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해서 불안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삶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엄마도 외할머니부터 안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건강한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 서글픈 악순환은 내 '대'에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오은영 박사님도 말했다.

어려서 건강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혹은 심한 체벌이나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더 '절실하게'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도널드 위니콧, 존 보울비 등의 애착이론을 절실하게 공부하면서 머리와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애착대상'이 꼭 '친엄마'가 아니어도 된다,는 부분도 격려가 됐다.


유아기에 방치, 학대를 당하면 영구적으로 뇌가 손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여러 건 발견됐다. 혹시 하레에게 문제가 '이미' 생겼고, 앞으로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대 사례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의 루마니아의 고아원에 있던 아이가 입양 가정에 가서 제 삶을 찾기 시작한 후, 이들의 뇌실과 대뇌 피질이 다시 부풀어오른 것이 확인된 것이다.





3~5세에 형성된 애착으로 만든 '내적 작동 모델':


1. 나는 어떤 사람인가?

2. 상대는 어떤 사람인가?

3. 세상은 어떠한가?


부정적인 내적 작동 모델이 형성되었을 경우, 이를 뒤엎을만큼 강력한 경험을 하지 않는 한 

인생 전체로 이어져 점점 단단해지고, 정교해진다.

<0~5세 애착 육아의 기적> 이보연




하레에게 무엇보다 '안전함'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지금, 여기에서 마음을 놓고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1. 하레의 오감을 일깨워주기

2. '멍'하니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할 때, 신체 감각을 통해 '현재'를 경험하게 하기.


이렇게 두 가지를 염두해 두고 '몸'을 매개로 아이를 '혼자'만의 세상에서 '바깥'으로 부드럽게 끌어 내기로 했다.


애니메이션 호빵맨 오프닝송인 'Dreaming'을 하레의 테마곡으로 정했다. 호빵맨 티셔츠도 만들어서 입혔다. (이 옷은 지금도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하레에게 만들어서 입혔던 호빵맨 티셔츠



무엇을 위해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나.
지금을 살아가는 것에 뜨거운 마음이 불타올라서.
그래서 너는 가는거야. 웃으면서.
사랑과 용기만이 친구야!
<날아라 호빵맨> 오프닝 행진곡 "Dreaming" 가사 중에서


매일 매일 하레에게 손뼉을 치면서 힘차게 불러 주었다. 나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먼저 '상어인형 의존'은 포옹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레가 거실과 놀이방을 오가며 혼자 놀다가 나에게 올 때, 두 팔을 크게 벌려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엉덩이를 토닥토닥거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엔 '예쁨 받는 것'이 어색한지 어쩔줄을 몰라하더니, 이제는 상어인형에게 그랬던 것처럼 놀다가 수시로 나에게 와서 안겼다. 가슴에 폭 안겨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놀았다.


며칠이 지나자 내가 당연히 자기 옆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는지,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옆자리를 비우는 걸 싫어해서 내가 화장실에 가면 따라와서 무릎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이제 간단한 집안일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도 혼자서 잘 놀았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도 상어인형을 들고 다니거나, 안고 다니거나, 찾지 않았다.

아빠가 집에 와서 문여는 소리만 들려도 냅다 뛰쳐 나가던 아이가 내가 "아빠왔다!!"라고 소리를 쳐도 놀이방에서 장난감에 몰입해서 노느라고 아빠가 온 줄도 모르기도 했다.


바닥에 버려진 상어인형




TV와 유튜브 중독을 끊기 위해서 한겨울이었지만, 어린이집을 마치면 옷을 따뜻하게 입혀서 놀이터에서 30분씩 놀다가 집에 왔다.

우리밖에 없었던 한 겨울의 놀이터




집안 구석구석에 공룡장난감들을 배치해놓고 "우와, 하레야 공룡이 '어서와' 하고 인사하네?"하고 호들갑을 떨고 장난을 치며 반응을 유도했다.


하레는 공룡 장난감은 자기방에 있어야 한다며 신경질을 부리면서 다시 자기방에 갖다두곤 했다. 주변환경의 모든것이 불안정할 때,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상황 통제'를 통해서 안심하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물건을 꼭 제자리에 두거나, 손을 미친듯이 씻는 등 강박적인 행동이 나타난다고. 하레도 마음이 점차 안정되고 나서야 이런 강박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아이의 거의 모든 삶은 '가상현실' 속 스크린에 있었다. 하레가 제일 좋아하는 공룡조차도 실제로는 없고 말이다. 그래서 현실을 '관찰'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림책 속에 있는 과일, 동물, 사물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었다. 




TV, 유튜브도 '틀어달라'고 할때까진 절대 틀어주지 않았다. 혼자 두지 않고 옆에 같이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봤다. 하레는 가끔 귀찮아 죽겠다는 십대 소년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하레와의 공통관심사를 찾기 위해서 핑크퐁, 뽀로로 동요, 공룡이름도 열심히 외웠다.




간단한 집안일도 도와달라고 하고 기꺼이 도와줄 땐 고맙다고 호들갑을 떨며 칭찬해 주었다.

하레야, 고모 '탕탕' 하는 거 좀 도와줄래?

하고는 빨래 너는 법을 가르쳐 줬더니, 재미있어 했다. 그 후로 빨래를 널때마다 신이 나서 달려와서 도와주었다.

귀엽





상황의 피해자로 무력하게 있을 필요가 없이 원하는 것과 감정을 선택하고 표현할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간식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하레의 식탁에 여러 개의 간식을 놓아두고 이름을 알려주고 "뭘 먹고싶어?"하고 물어보고, 스스로 골라서 먹게 했다.



과일, 과자, 소세지, 치즈 등 매일 매일 다양한 간식을 준비해두고 "오늘은 집에 가면 뭐가 있을까?"하고 물어 보기도 하고. 다양한 음식을 만져 보고, 냄새 맡고, 먹어 보며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찾아나가도록 했다. 장난감과 진짜를 갖다놓고 장난을 쳐보기도 하고.


하레가 좋아하는 간식은 킨더조이, 하리보 미니젤리였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간식을 먹이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오은영 박사님이 '지나치게 금지'하면 오히려 바깥에서 몰래 먹는다고 적당히 하는 게 좋다고 해서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을 정해두고 지키는 법을 가르치기로 스스로와 절충했다.


식생활도 개선되어야 했다.

'김'만 먹으려고 해서 주먹밥, 파스타, 피자토스트, 계란찜, 두부 반찬, 동그랑땡 등 매일 매일 최대한 다양한 음식들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먹진 않더라도 '다양한 음식이 있다'라는 걸 하레가 알았으면 했다.


나는 요리를 못하고 싫어하는 편이라, 매일 식단을 짜고 레시피를 익히고 요리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요리한 걸 다 거부하고(심지어 어떤때는 밥그릇에 '풰!'하고 뱉아내고) 다시 김만 싸서 먹을때는 멘붕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에게 일단 '밥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는 것을 분위기로 가르쳐야지, 밥먹는 일을 숙제처럼 여기게 하지 말아라, 잘 먹는 게 있으면 그거만 먹여도 크게 영양결핍이 오지 않는다,는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했다.

오은영 박사님 없었으면 육아 어떻게 했을지, 진짜. 휴-





하레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지만 문제 행동이 여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하레가 헬로카봇 경찰차를 들고와서 로보트로 변신시켜 달라고 했다.

작은 부품들이 뻑뻑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가 

"고모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이따가 아빠 오면 해달라고 하자."라고 했다.


아빠는 갖다주면 착착착 조립해서 다시 돌려주는데, 내가 못한다고 하자 하레가 또 폭력적으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사과하고 아이의 속상함에 공감해 주기로 했다.

"미안해. 고모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속상했어?" 


그러자 하레는 갑자기 나에게 안겨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가슴에 맺힌 한을 다 쏟아내듯 한참을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로보트 조립이 문제가 아니라, 뭐 하나 제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무력함 같은 것이 아이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묵은 상처를 건드린 것 같은 울음이었다.

하레가 스스로 그칠 때까지 그냥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던 하레의 표정을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서 사악한 마녀의 저주에 걸렸다가 풀려난 사람을 묘사할 때처럼 아이의 온 몸이 무언가 생명력같은 걸로 화사하게 빛났다.


눈빛이 달라졌다.

그 서러운 울음으로 아이의 가슴 속에 얼어붙었던  응어리가 실제로 녹아서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이 날을 기점으로 하레는 다시는 예전의 우울한 꼬마아이로 돌아가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6. 부모의 이혼 후, 다시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