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온도와 습도의 바람은 나를 일순간에 그날로 데려가는 것만 같다. 제아무리 날고 기어 멀리 떠나왔어도 이 바람 앞에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그 출발점에 서게 된다.
2018년 11월 1일. 스물네 시간이 넘는 비행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종료되었을 때,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열두 시간을 달려 베를린 어딘가에 도착했다. 예정된 여덟 시간을 우습게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분명 3박이 예약된 숙소 가까이에 있는 터미널에 내려야 하는데 또 마침 엉뚱한 곳에서 종점을 맞았다. 구글지도를 한참 들여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함께 하차한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더 늦기 전에 터미널 밖으로 나가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23킬로짜리 캐리어와 그 위에 얹힌 7킬로쯤 나가는 토트백 하나, 여권과 현금이 들어있는 손바닥 한 개 반 정도 되는 길이의 작은 크로스백. 덜고 덜어 스물넷 인생이 최소한으로 담긴 이 짐은 어째서 스물넷이 혼자 끌기에 이토록 무거운가. 하지만 제주도에서 베를린까지 모든 여정이 최저가로 점철된 이 여정에 ‘택시 타기’란 없는 선택지였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편도 300유로, 당시 환율로 4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비행 편으로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무엇보다 큰 보람을 선사했으므로, 공중에서, 고속도로에서 36시간을 보낸 뒤에도 여전히 내 몸보다는 돈을 아끼는 데에 혈안이었다.
겨우 탑승한 지하철, 우반(U-Bahn)은 만원이었다. 바로 어제 2호선을 타고 사당역에 내려 공항으로 향했던 나에게 이 정도 붐비는 지하철은 여유로운 편이다. 사람 한 명만큼이나 공간을 차지하는 내 짐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시선이 껄끄러울 뿐. 서울에서는 다들 제 핸드폰을 보느라 바쁜데 여기는 어째 구경하듯 나를 쳐다봤다.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만 해도 무척 추웠는데 앞뒤로 사람 숲에 갇히니 이제야 식은땀이 삐질 나왔다. 캐리어 위에 얹힌 토트백에서 손풍기를 꺼내 얼굴에 갖다 댔다. 어제 인천공항에 갈 때까지 죽 쓰던 휴대용 선풍기였다. 서울은 내가 떠나는 날에도 이렇게 더웠다. 금방 더 많은 시선이 나와 손풍기를 향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오는 동안, 서너 번 휴게소를 들르는 동안 나는 한 번 밖에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혹시 내가 화장실에 있는 사이 버스가 떠날까 봐, 또, 내가 없는 사이 내 짐이 도둑맞기라도 할까 봐. 중간에 짐이고 나발이고 존엄성을 잃느니 짐을 잃는 게 낫겠다는 다급한 판단으로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온 게 전부였다. 열두 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물은커녕 입술도 적시지 못했던 나는 물을 먼저 마셔야 할지 화장실을 먼저 가야 할지 모를 만큼 일촉즉발의 상태에 있었다.
부리나케 입실 수속을 밟고 짐을 부린 후 향했던 곳은 숙소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쇼핑몰이었다. 생수를 구할 수 있는 곳 중 가장 가까운 곳이다. 난 그때 왜 그냥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굳이 생수를 사러 나갔던 걸까? 목이 아직 덜 말랐던 걸까? 말도 안 된다. 나는 그저 이 고난과 애타는 기다림의 끝이 고작 화장실 수돗물이라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목이 타 들어갈수록 다디단 생수를 향한 기대도 커져갔다.
신이 있다면 분명 철없는 운명의 장난꾸러기일 것이다. 겨우 도착한 쇼핑몰 앞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는데, 도통 들어서는 사람들인지 나서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흐드러진 할로윈 장식에 눈길을 돌릴 틈도 없이 상황파악에 나섰다. 알고 보니 건물 내 기술 결함으로 인해 구름 인파를 밖으로 대피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몇 분을 그 앞에서 기다렸을까? 모르는 사이 이미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냈던 나는 더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지금까지 서른여섯 시간이 넘는 동안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어쩌면 난 이 고난 끝에 고작 화장실 수돗물을 먹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얻은 한 병의 생수를 들이켜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난 정말 이 도전 끝에 생명수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갖은 노력의 대가가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6년이 지난 오늘, 다시금 불어온 그날의 낯선 공기를 나는 익숙하게 감각한다. 이젠 샘터와 다름없는 이곳, 여전히 베를린에서.